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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北에 1달러도 안 줬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20.07.29 03:18
2002년 3월 미 의회조사국의 래리 닉시 연구원이 '현대가 북한에 금강산 사업비 외에 4억달러의 비밀
자금(Secret payments)을 줬다'는 보고서를 썼다. 당시 현대와 북한의 이면 계약설이 돌았지만 구체
적 금액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그는 "한국 국회가 조사하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대중 정부와 현대 모두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해 6월 서해에서 북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기습 공격했다. 국군 6명이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다.
북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단번에 명중시켰다는 보도를 보고 북이 신무기를 썼다고 생각한 국민이 적
지 않았다. 엄낙용 당시 산업은행 총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닉시 보고서'에는 북한이 한국에서 받은
거액의 현금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CIA 분석이 나온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그해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엄낙용 총재가 현대상선이 산은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4억달러)
에 대해 엄호성 의원의 질의를 받았다. 그는 현대상선 사장이 "우리가 쓴 돈이 아니다. 정부가 대신 갚
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 문제로 국정원 대북담당 차장을 만났다고도 했다. 4000억원 대출
을 승인한 전임자(당시 금감위원장)가 "나도 고민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하도 말씀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불법 대북 송금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엄 총재는 2017년 회고록에서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무장이 남한에서 보낸 자금으로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또 2002년 초 만난 S그룹 임원이 '(김대중) 정부
가 대북 사업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데 골치가 아프다'고 하더라며 '(나는) 현대에 이어 다른 기업까지
대북 사업에 연루되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북 송금을 직접 밝히기로 결심한 이유다.

▶결국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수사에서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뒷돈'으로 북에 4억5000만달러가 넘
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발표 직후 엄 총재는 "덮어두면 가슴속에 암(癌)이 될 것 같아 진실을 얘기
한 것"이라고 했다. 대북 송금에 합의한 사람은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 그는 "1달러도 안
줬다"고 거짓말을 계속 했다. 증거가 다 드러나 감옥에 갔다. 그 박지원이 국정원장이 됐다. 그런데 청
문회에서 '북에 30억달러 제공 이면 합의서'에 대해 "위조 서류"라고 했다. '1달러도 안 줬다'는 거짓말
이 떠오른다.

출처 : 조선닷컴
2020년07월29일 15:17: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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