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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감정 충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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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정치부 차장

국가가 항상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집단적 지혜를 입안·집행할 것이라
는 바람과 달리 국가는 때때로 가장 감정적인 선택을 한다. 늘 전쟁은 국가들의 비이성적 집단 ‘광기’와
‘오산’의 중첩된 결과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도화선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 암살과 이에 따른 감정적 반발이었다. 일본도 1941년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 속에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는 선택을 했고, 이를 교훈 삼아 일본은 전후 매우 이성
적인 국가로 변모했다.

그런 일본이 전후 74년 만에 다시 비이성적 국가 대열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지난 4일 일제강점기 강
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지운 대법원 판결에 항의,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뒤 실제 일부 전략물자 수출을 규제한 것. 아베 신조(安倍晋
三) 총리가 내세운 명분은 궁색했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신뢰 저하의 원인으로 꼽은 ‘대북제재 이
행 위반’ 의혹은 일본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민간단체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는 17일 공개한 보
고서에서 일본이 대북 사치품 수출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자양분은 혐한으로 집결되고 있는, 과거 군국주의 시대를 지향하는 일본 내 민족주의다.
아베 총리의 대한(對韓) 경제보복 조치, 더 나아가 평화헌법 수정으로 향하고 있는 ‘우경화’ 행보는 탈
(脫)이성을 넘어 반(反)이성으로 치닫고 있는 국제사회 조류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도
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을 더 위대하게’도 민족주의의 미국 버전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시진핑(習近平) 시대에는 ‘중화 민족주의’로 변질되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일본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쟁 시대에나 들을 법했던 ‘국채보상운동’ ‘죽창
가’ 등이 쉽게 흘러나온다. 물론 민족주의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모든 ‘주의’에는 양면이 있듯이, 민족
주의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끌어낸 핵심 동력이었다. 반면 민족주의는 감정적 반응을 끌어내기
도 쉽다. 지금 한·일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비화한 데에는 양국 모두에서 민족주의적 요소가 역할을 하
고 있다는 점을 진보든, 보수든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감정은 어찌 보면 인간, 더 나아가 국가에도 가장 기본적 본능이다. 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아야 해법 모
색이 가능하다. 한·일 관계 회복에 시간이 필요한 이유이자, 양국 지도자들이 모두 감정적 발언을 삼가
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한·일 갈등 이후 곧바로 미국에 건너가 협조를 요청한 것도 감정적 반응
에 더 가깝다. 공개적 협조 요청은 미국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일본의 분노를 더 키울 수 있다. 감정
을 걷어내야 아베 총리와 분리해 일본 내 침묵하는 양심 세력을 깨우는 ‘공공외교’가 가능하다. 그래야
만 한계에 달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합의한 ‘1998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한·일 관계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보여줬듯 한국에서
는 진보 정권만이 할 수 있다.

출처;문화일보
2019년07월21일 12:41:0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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