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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않았다
이 정부 돈 씀씀이 믿고 기부하는 게 탐탁잖았는데 윤미향 사건 터졌다 자영업자 도우려 직접 돈 쓴다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20.05.21 03:16


재난지원금을 받을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로 딱히 가계가 어려워졌다고 할 수 없다.
나랏돈을 받아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렵지도 않다. 소득 하위 70%에 재난지원금을 준다면 현금 살포에
인이 박인 이 정권의 무능을 탓할 문제일 뿐 '왜 80%가 아니고 70%인가'를 따질 일은 아니었다. 70%에
돈을 준다면 71%에 해당하는 사람은 돈을 못 받게 되는 정책이 합리적인가 생각해볼 뿐이었다.

어느 날 전 국민에게 돈을 주겠다는 정책이 발표됐다. 여당이 선거에서 압승한 직후였다. 다 주되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들에게 기부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실로 대단한 수(手)였다. 청와대 앞 어느 와인바
또는 일식집에서 업무 추진비를 써가며 궁리하다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고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묘책이었다. 어떤 난국 속에서도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독차지하고야 마는 권
력의 집요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위 70%에 돈을 뿌리자는 데 의견이 모였을 때 권력 내 누군가가 "그건 평등하지 않다는 말을 듣기 쉽
다"고 제동을 걸었을 것이다. 전 국민에게 돈을 주면 되지만 그러면 권력 눈에 꼴 보기 싫은 사람들도
다 받게 된다. 이건 또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기부' 아이디어
를 내자 다들 박수 치며 환호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
의로운' 것으로 포장하는 데 딱 알맞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달을 버틸지 모르는 중소기업과 종업원을 전부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지키는 식당 주인에게
돈 100만원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몇 조원을 풀어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전 국민이 몇 십만원씩 용돈을 받으면 코로나 위기가 극복되나. 그 돈 나눠 주느라 진 나랏빚은 앞으로
누가 어떻게 갚을 것인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권력은 정치라는 칼로 싹둑 잘라서 마치 해결
한 시늉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앞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생기
는 모든 부작용은 '국민이 생각보다 기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가 될 것이다.

어쨌든 갑자기 정부의 지원 대상이 되어 돈을 받게 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이모저모 따질 것 없이
그냥 신청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윤미향 사건이 터졌다. 나는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이 정권과 그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좋은 것 독차지'는 그악스러울 정도다. 항일·반일 투사 다 차지하
고 맛있는 일본 과자도 사다 먹었으니 그렇지 않은가. 아흔 살 넘은 할머니들 쉼터를 제일 멀고 가기 힘
든 시골에 사서 텅 비워놨다. 그 집 관리인으로는 친아버지를 고용했다. 일은 난장판으로 해놓고 그 집
이름에 '평화와 치유'라는 말을 들씌워놨다. 그러고는 한다는 변명이 "사려 깊지 못했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다. "잘못했습니다" 대신 "사려 깊지 못했다"고 해도 무척 정치적인
수사인데, 천명(闡明)씩이나 그것도 '대외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니. 말의 신기원을 이룬
조국씨가 서러워할 경지다.

원래 정부와 지자체는 기부금을 받을 수 없다. 그 법까지 바꿔가며 재난지원금 기부를 받고 있다. 이 정
부 돈 씀씀이를 믿고 기부하는 게 영 탐탁지 않아 머뭇거리던 차에 윤미향씨를 보고 기부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나는 재난지원금으로 동네 식당과 빵집, 호프집에 열심히 드나들고 있다. 코로나에 허덕이
는 자영업자들을 직접 돕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출처 :조선닷컴
2020년05월21일 14:06:4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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