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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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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일자 : 2011-05-23 13:57
윤창중 / 논설실장
노무현은 격정을 쏟아냈다. 김대중 정권 시절,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사흘 되던 저녁. 안주 한 접시에 7000원, 8000원 하는 밥집에서 언론인 몇몇과 만났다. 앉자마자 폭탄주 한잔 하자고 했다. 또 사고 치겠군, 하는 걱정이 들었다. 폭탄주를 서너잔 돌리더니 이내 “왜 신문사에서 대권후보 여론조사할 때 날 뺍니까?” 거칠게 물어왔다. “노 장관을 여론조사에 집어넣어도 아예 잡히지도 않아요.” 자존심이 상해 못참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아니, 그렇다니깐요.” 2001년 3월이었다. 그때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될 거라고 내다본 사람은 역술가 정도였다. 실현 불가능한 꿈에 도취한 이단자의 격정, “내가 신문사 사주(社主) 몇 사람은 구속시킬 겁니다.”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댔다. “언제요?” 노무현은 주저없이 “대통령이 되면요”라고 말했다. 속으로 ‘아, 이 대책 없는 나르시시스트여’라고 중얼거렸다. “그럼 언론사 사주들이 구속될 일은 없겠네요.” “왜요?” “노 장관! 대통령이 될 일이 있겠나요.” 거나하게 취한 노무현은 나중에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태영과 함께 인사동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 나르시시스트적인 권력의지를 갖고 대통령 DJ의 낙점을 받아내는 데 성공! 박지원과 같은 DJ 복심들과 내밀하게 합작해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노풍을 연출한다. 대세론에 안도했던 이인제와 숱한 동교동계 적자(嫡子)들을 무너뜨리고. 개천에서 용(龍)이 탄생!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하나같이 자수성가형이고, 개천에서 태어난 용이었다. 지옥에 떨어져도 제발로 걸어나오는 근성(根性)의 권력의지가 있어야 정권을 잡게 되는 것. 조선왕조 500년을 이은 왕 27명 중 장자 계승 원칙에 따른 왕은 7명, 나머지 20명의 왕위는 ‘후계자 순리(順理)’를 깨고 손자, 동생, 숙부, 조카, 방계들에게. 순리가 지켜지기 어려운 게 권력! 왜? 권력은 칼로 잡는 것, 순리라 해도 힘으로 지켜내겠다는 권력의지가 없다면 새로 만들어진 순리에 떠밀려나는 것! 박정희의 조카사위이자 제2인자 김종필이 결국 정권을 잡지 못한 건 후계자 순리를 지키겠다는 권력의지가 없었기 때문이고, 김영삼이 노태우의 뒤를 잇게 된 건 후계자 순리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권력을 쟁취했기 때문.
박근혜는 김영삼의 길보다 김종필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박근혜의 눈으로는 MB에게 승복한 게 다음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순리를 마련한 것이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대세론을 잘 유지만 하면 대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게 박정희 시대 JP의 처신. 박근혜는 대선후보와 당대표를 분리한 당헌을 개정하는 건 정치개혁에 반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워 또다시 은둔의 신비주의로 숨게 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좋다. 박근혜의 원칙 정치라는 게. 그러나 한나라당 몰락→총선 패배→대선 패배→좌파집권이 눈앞에 닥쳐왔는데, 원칙에도 선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MB와 대적할 수 있는 ‘실세 당대표’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민심의 가슴 시원하게 뚫리게 하는 소릴 해야 근본적으로 민심을 확확 되돌릴 수 있거늘. 그깟 당헌이란 게 무슨 원칙인가! 대학 강단에서 플라톤의 도덕주의나 강조하면 딱 맞는 그릇의 용렬한 ‘원칙병 환자’.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된다-현실주의의 마키아벨리즘! 밥상 다 차려줘야 숟가락 들고 나오고, 제발 좀 하며 꽃가마 태워줄 때까지 기다리는 체질로 정권을? 권력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안이하다. 나태하다.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겠다니, 이제 한나라당 내 반(反) 박근혜 세력에게 공이 넘어간 것이다. 7·4 전당대회에서 ‘반 박근혜 당대표 후보’를 단일화해 내세워라! ‘개천의 용’을 만들어 내는 발상을 할 단계에 왔다. 대선후보·당대표를 분리한 당헌은 대선후보 경선 전까지만 바꾸면 그만이다. 새로 등장한 ‘개천의 용’과 박근혜가 경쟁하는 체제만 만들어지면 내년 총선·대선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극적으로 뒤바꿔 나갈 수 있다. 한나라당이 박근혜에게 더 이상 연연할 이유가 없다.
<고정물>시론-윤창중 논설실장
출처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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