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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노사모 등 정치인 팬클럽, '적의 적은 우리의 동지', '걸리면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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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정치인 팬 클럽문화, 현 주소를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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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본
▲ 정광용 박사모 회장
10월 26일 서울중앙지검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정광용 회장을 구속했다. 사유는 지난 해 6월 라디오방송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관계를 언급하며 '애첩''관기'로 모욕한 혐의다.
정 씨는 재판을 받아오다 선고를 앞둔 지난 6월부터 5차례나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10월 23일 교통사고로 분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 지명수배 사실이 밝혀져 곧바로 구속됐다. 그 후 10월 30일 정 씨의 사과에 이은 나 의원의 고소취하로 정 씨는 구속에서 풀려났지만 일시적 그의 공백으로 터져나온 박사모 내부의 파열음은 적지 않았다.
정 씨가 구속되자 박사모는 그간 누적된 내부적 불화가 폭발하듯 내홍에 빠져들었다. 정 씨를 지지 혹은 반대하는 쪽으로 팽팽히 갈라져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10월 26일 반대측 수백명은 서울 한 웨딩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정 씨의 ‘구속’과 ‘독선적 카페운영’을 이유로 정씨를 해임하고 '박사모 비상대책위원회'(뉴박사모)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정 씨의 횡령 의혹까지도 제기하며 총공세에 돌입, 양측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모양새다. 정치인 팬클럽 박사모의 곰삭은 그 운영상의 파행성을 그대로 웅변하는 듯하다.
박사모, "적의 적은 우리의 동지", "걸리면 다 죽는다"
현재 박사모 카페(http://cafe.daum.net/parkgunhye/)에 등록된 회원수는 5만명 이상으로, 정 씨를 비롯한 열성 회원들은 ‘박근혜 파워’를 앞세워 총선과 재·보선 등 각종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지난해 4·9총선에서 그들의 활약(?)상은 '적으로 간주된' 한나라당 의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들의 공격은 그간 박근혜 전 대표와 대립각의 정점에 있던 친이 핵심 이재오(서울 은평)-이방오(충남 사천) 전 의원에게 주로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해 3월 2일 박사모는 경남 사천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 공천파동의 책임자인 이방호 사무총장이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으면 대대적인 낙선 운동에 돌입하겠다”며 “(당시 접전중이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후보 한 사람이 당선된다 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지만 이방호가 당선되면 나라가 결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라는 신념으로 한나라당 의원의 팬클럽인 박사모가 민노당 강기갑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박사모의 종횡무진(縱橫無盡) 활약이 중요하게 작용, 마침내 이방호 전 의원은 당시 선거에서 178표차의 초박빙으로 고배를 마셨다. 이런 사정은 이재오 전 의원의 지역구인 은평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 전 의원 역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석패했다.
박사모 맹공 속에서도 가까스로 금배지는 달았지만, 진땀 꽤나 뺐던 경우가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영등포 갑)의 경우이다. 한때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다가 이명박 지지를 선언한 전 의원은 박사모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당시에도 박사모 회장이던 정 씨는 지난해 4월 5일 영등포시장 로터리에서 친박연대 지원연설을 하던 중 “한나라당을 살리기 위해선 전여옥부터 퇴출시켜야 한다”며 “가능한 한 친박연대를 찍어 달라. 단 여러분 판단으로 김영주 후보가 되겠다면 김영주 후보를 찍어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민주당 김영주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이다. 지지정치인의 정당과 팬클럽 간 심각한 괴리현상이었다. 기존 정당정치가 당연시하던 ‘문법’은 팬클럽 정치의 영역에 들어오면 전혀 당연하지 않은 얘기가 됐다. 추앙하는 정치인의 이익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돌격대의 모습이다.
박사모에게서 이런 현상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지난 7월17일 박사모 게시판에는 흥미로운 글이 공지로 올랐다. 글은 ‘박근혜님, 보수 메이저 신문(조·중·동)과 정면대결!’이라는 제하로,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을 두고 조·중·동과 정면충돌했다는 소식을 흥분된 투로 전했다. 아래에는 “조·중·동에게 방송 허용되는 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열 걸음 뒤로 후퇴하는 날이 될 겁니다” 따위 댓글이 달렸다. 보수 한나라당 정치인의 팬 카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당정치와는 별개의 논리로 움직이는 팬클럽 정치의 진풍경인 것이다.
현대 정당정치는 정당이 정치의 주요수단이 되는 원리로, 정당은 정책으로 말하고, 국민은 정책 선호도에 따라 지지정당을 결정한다. 정당에 대한 소속정치인의 최소한의 기속(羈屬)은 정당정치의 기본이고, ‘정당인이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자기당의 후보를 두고 타당을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는 기본적 룰도 여기서 도출된다. 하지만 박사모 같은 팬클럽으로 가면 이런 상식적 룰은 무용지물이 된다.
팬클럽식 우상화,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순행의 역사로 귀결될 수 없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부서진 이명박 대통령 화환
박사모와 형태는 다르지만, 정치인 개인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는 '팬클럽 정치'의 원조라 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도 재연됐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직후인 5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추모조화를 보냈다. 이 조화가 분향소가 차려진 마을회관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노사모 소속 회원 몇 명이 이를 내동댕이치고 발로 밟았고, 일부는 불을 붙이려는 시도까지 했다.
진행요원이 제지에 나섰으나 이미 처참히 훼손된 조화는 분향소에 세워지지 못했다. 당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버스로 봉하마을로 들어오려다 일부 노사모 회원들의 격한 행동으로 저지됐고,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이들의 폐쇄성으로 분향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 타계 후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로 절정을 이뤘던 팬클럽 정치의 바람은 다시 거세게 불어왔다. 그때처럼, 또다시 방아쇠는 노 전 대통령이었다. 서거 이후 노사모 회원은 1만 명이 늘어 총 12만 명, 유시민 전 장관 팬클럽 ‘시민광장’은 7000명이 늘어 총 1만8000명, 지난 6월4일 새로 문을 연 이해찬 전 총리의 팬클럽 ‘대장부엉이’는 한 달여 만에 6000명이 넘는 회원을 모았다.
하지만 팬클럽 정치와 정당 정치를 화해시키지 못한 것이 노 전 대통령을 고립시키고 결국 노사모의 ‘실패’를 불렀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노사모 역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노사모 이동희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민의 직접 참여라는 화두는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니지만 지금의 정치 팬클럽 모델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며 “지금이야말로 노사모가 변화를 주도해야 할 때”라고 사실상 현재 팬클럽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정했다.
개인의 우상화와 맹목적 추종, 그로 인한 비이성적 행태는 이미 박사모 등 우리 사회 여러 팬클럽의 전형적 코드가 됐다. 노 전 대통령 사망 후 한 좌파언론은 “지각(知覺) 잃은 일부 언론과 이에 동조한 대중의 전염성 최루물인 감성정치가 이미 한 남자(노 전 대통령 지칭)를 불멸의 신화로 거듭나게 했다”고 지나친 우상화 현상을 꼬집었다. 이런 우상화의 근원에 팬클럽정치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문의 다른 기사는 “이미 ‘정책적으로 실패한 노무현’을 ‘인간성’ 운운하며 감상적 포퓰리즘(populism)으로 ‘우상화’한 이후의 결과라는 것이 장·단기적 전망 어디에도 절대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순행의 역사로 귀결될 수 없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싶다”고 일갈했다.
"朴이 국보법 폐지 찬성했으면, 이들도 따라 했을 것"
월간조선 L 모 기자의 경험담은 팬클럽의 현주소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낸다. 지난 2004년 9월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이 치열했던 당시 박사모 회원 500명은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국보법 폐지 반대 및 과거사 제대로 밝히기 국민대회’를 열었다. 그날 뜻을 같이해 행사에 동참하려던 ‘무한전진’ 등 청년우파단체들이 그 단체 명의의 플래카드를 펼쳤다가 박사모 회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한 마디로 ‘남의 단체 행사에 와서 왜 너희 단체 플래카드를 펼치느냐. 이건 어디까지나 박사모 행사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월간조선의 L 모기자는 “이들은 보수우파가 아니구나. 만일 박 전 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했다면, 이들은 또 찬성 집회를 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국회의원 모임 ‘함께 내일로’ 신윤철 사무처장은 팬클럽 정치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로 형식적으로는 참여가 가능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참여 루트는 없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부터 시민 참여 공간을 만들어온 정치 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정치 엘리트들은 시민의 참여 폭을 넓히는 대안적 정당체제를 만들어내는 대신 개별적으로 기존체제에 투항해버렸다. 참여할 길을 찾지 못한 시민은 정치적 열망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발언하는 대신 특정 정치인에게 의탁해버린다” 며 우리 정치판의 팬클럽 성행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당 정치를 위해 팬클럽 정치를 자제해야 한다는 식의 훈계는 실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팬클럽 정치의 현실 앞에 의미가 없다”며 “문제는 대중의 열망을 등에 업은 정치인이 그들의 이해가 진정 반영되는 방식으로 정당 정치 시스템을 바꿔내느냐이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유난히 취약한 정당 정치가 유난히 강력한 팬클럽 정치를 만든다.” 많은 정치학자는 한국 정치의 에너지가 정당이 아닌 팬클럽으로 동원되는 현상을 두고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한다. 그간 팬클럽의 여러 물의성을 인식하고 또 다른 현실정치 참여를 모색하는 노사모의 시도가 정당 정치와의 조화로 귀결될지, 아니면 더 강력한 팬클럽으로 변모해 간극만 벌려놓을지 짐작하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회원 12만의 초거대 팬클럽 '노사모'가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사실만은 그 변화방향을 떠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팬클럽정치문화의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미 늦은 건지도 모르겠다.
출 처 투데이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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