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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설 떡값 못 챙겨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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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인건비 300만원 뛴 식당 사장 "12년만에 처음 봉투 준비 못해"최저임금에 지독한 불황 겹쳐… 중기 52%만 상여금 지급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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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오로라 기자
입력 2019.02.02 03:00
서울 마포구에서 12년 전부터 중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진만석(58·가명)씨는 올해 처음으로 직원들에게 명절 떡값을 못 준다. 그는 작년까지 매년 설과 추석에 직원 15명에게 고향 내려가는 차비에 보태라며 1인당 20만원씩 총 300만원을 챙겨줬다. 하지만 올해는 지독한 불경기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쇼크까지 겹쳐 도저히 여윳돈이 생기지 않았다. 진씨는 "장사가 정말 안 됐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시절에도 명절 떡값을 직원들 손에 쥐여줬다"며 "지금은 직원들 얼굴 보기가 정말 괴롭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박종한씨가 올해 들어 부쩍 줄어든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한식당 사장님 "계산이 안 나와요" -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박종한씨가 올해 들어 부쩍 줄어든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그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과 매상 부진 탓에 올해 직원들에게 주는 설 상여금을 20만원 줄였다. /김연정 객원기자
진씨 가게는 동네 단골이 많다. 하루 200만원 넘게 매출이 나왔다. 가게 월세, 직원 인건비, 재료비 등을 제외해도 한 달에 600만~700만원 정도는 여유롭게 벌 수 있어 명절에 300만원의 떡값은 기분 좋게 쓸 수 있었다. 그는 "그런데 지난 1월에는 인건비가 지난해 12월보다 300만원 넘게 더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은 계속해서 줄어드는데 최저임금까지 오르니 1월 수중에 들어온 돈이 200만원밖에 안 되더라"며 "평소대로 떡값을 챙겨주려면 내가 빈털터리가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 침체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 명절 '떡값'이 사라지며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들이 씁쓸한 설날을 맞이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지난해 16.4%가 오른 데 이어 올해도 10.9% 상승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사장들이 1월 말에 인상된 임금을 처음으로 지급해본 후 타격을 피부로 느꼈다"며 "당장 폐업을 앞둔 가게도 많은데 설 상여금을 챙겨주는 온정을 찾아보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85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설 상여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지난해 대비 4.2%포인트 줄어든 51.9%에 그쳤다. 2년 전 설에 비해서는 7.9%포인트 떨어졌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부담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0일 본지가 서울 중구 다동길과 을지로 3길에 있는 무교동 음식문화거리 음식점 34곳을 조사한 결과, 취재에 응한 식당 26곳 중 18곳(69%)이 "올 설엔 직원에게 따로 선물이나 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일식집 사장 김모씨는 "작년까진 아르바이트생에게도 10만원씩 차비로 쓰라고 챙겨줬는데, 올해에는 가게 월세도 내기 버거워져 아예 못 주게 됐다"며 "다음 달부턴 주방 직원도 한 명 추가로 내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변 한식집 사장 박모씨는 "파출부 임금은 하루 9만원에서 12만원으로 올랐는데, 가게 장사는 하루에 50만원도 안 될 때가 많다"며 "매달 적자 상태로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데 상여금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종한(71)씨는 "10년 이상 일한 직원들은 설 상여금을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다른 직원들은 30만원에서 10만원으로 20만원씩 줄였다"며 "상여금을 넉넉히 줄 만한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강원도 속초시에서 A숙박 업체를 운영하는 현모씨는 "장사가 잘될 땐 매년 설과 추석에 직원당 100만원씩 떡값을 줬다"며 "그런데 이번 1월 장부를 정리해보니 적자가 200만원이나 돼 올해는 보너스가 없다고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직원들도 울상이다. A숙박 업체 직원 신모(36)씨는 "월급이 200만원에서 220만원으로 오른 건 좋았는데, 설 상여금이 없어지니 결국 한 해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2600만원 정도로 엇비슷하더라"고 말했다. 서울 한 마트에서 일하는 김수희(54)씨는 "상여금 받기 미안할 정도로 장사가 안 돼 이해는 하지만, 설 특유의 따뜻함이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설 상여금 주느라 빚내는 경우도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한다'고 대답한 업체들의 평균 지급 액수는 65만1000원으로 작년(72만9000원)보다 7만8000원이 줄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중소 출판 업체 아이앤북의 직원은 작년 설 상여금으로 많게는 120만원, 적게는 60만원 수준의 돈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엔 상여금 액수가 30만~6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이상훈 아이앤북 대표는 "한국제책공업협동조합에 가입된 80개사에서 설에 상여금을 못 주는 곳이 90%"라며 "매출이 매년 20~30%씩 하락하고 있어 우리도 올 추석부터는 계속해서 상여금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설 자금이 곤란하다고 응답한 비수도권 지역 기업은 52.3%로 수도권(34.5%)보다 훨씬 많았다. 경남 창원에 있는 중소 기계설비 업체 함모(57) 대표는 설 상여금을 주기 위해 최근 시중은행에서 2000 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는 "매년 명절에 직원 9명에게 200만원씩 약 2000만원 돈이 나갔다"며 "올해는 회사가 적자 상태라 상여금을 못 줄 것 같았는데, 주변 사장님들이 '항상 주던 상여금을 없애면 위법이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을 해줘 급하게 대출을 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 작성에는 조정빈 인턴기자(서울대 언어학과 졸업예정)가 참여했습니다
출처;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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