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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청춘들 "곰돌이 푸, 내 멘토가 돼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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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입력 2018.10.15 03:00
디즈니 애니 주인공 곰돌이 푸… 담백한 조언에 2040 열광
소셜미디어에 '어록' 올리고 에세이집 나오자 베스트셀러 1위
간호사 박슬기(31)씨는 얼마 전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관람했다. "'경쟁에서 이겨라'고
충고하는 영화, 성공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영화는 어쩐지 피곤하게 느껴져서요. 그때 '가족과 나 자신
의 행복에 집중하라'는 곰돌이 푸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지요."
직장인에게 큰 인기를 끌며 서점가를 점령한 ‘곰돌이 푸’가 극장에도 진출했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
션을 실사화한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가족 영화이지만, 어린이보다 어른 관객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호호호비치
곰 한 마리가 트렌드를 움직이고 있다. 지난 3일 개봉한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가족 영화를
표방하지만 막상 극장에 가보면 어린이 관객은 거의 없고 어른만 바글바글하다. 이 영화는 일만 하느라
아내와 딸에게 소원한 크리스토퍼 로빈(이완 맥그리거) 앞에 갑자기 푸가 나타나 잃어버린 동심을 찾게
도와주고, 그 덕분에 가족과도 믿음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9일 서울 용산CGV에서 만난 관객 대
부분도 20~40대 직장인. 이들은 영화가 끝나자 기념품 가게로 몰려가 곰돌이 푸 인형과 공책, 볼펜 등
을 사기 바빴다.
◇'멘토'로 돌아온 곰돌이 푸
'곰돌이 푸'(1977)는 1926년 쓰인 동명의 영국 동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곰을 푸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그려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세월이 흘러 20~40대 어른이 된
그들이 곰돌이 푸를 다시 찾는 건 조언(助言)을 구하기 위해서다. 9일 곰돌이 푸 인형을 들고 영화관을
찾은 직장인 김가영(28)씨는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여가가 늘었는데, 막상 일을 안 하고 쉬려니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며 "영화 속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푸의 조언이 불안감을 덜어줬
다"고 했다. 13일 현재 관객 37만 명을 넘어선 이 영화는 20~40대 관객 비중이 90.9%(CGV 통계)에 달
한다.
'멘토'가 되어 돌아온 곰돌이 푸의 인기는 3~4년 전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됐다. 담백한 조언에 목마른
젊은 세대가 '철학자 푸 선생님 어록'이라며 앞다퉈 동화 속 푸가 남긴 명언들을 찾아 올리기 시작한 것.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걸 하게 되지' '사랑은
쓰는 게 아니야. 느끼는 거지' 등이 대표적이다. 푸의 어록을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까지 등장했다. 올해
3월 출시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출시 직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뒤 지금까지 38
만 부 넘게 팔렸다.
◇서점가 강타한 '정겨운 친구들'
곰돌이 푸를 앞세운 책이 히트하자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는 미키 마우스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을 내세운 캐릭터 에세이를 연달아 출간했다. 모두 서점가 베스트셀러 50위 안에 들었다. 지난해 10만
부 이상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역시 일본 만화 캐릭
터의 대사를 내세운 에세이다. 알에이치코리아 최경민 대리는 "젊은 세대일수록 어린 시절을 함께한 캐
릭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친밀감을 가지더라. 명사 혹은 낯선 이들의 조언보다 거부감을 덜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20~40대 학생·직장인들은 영화가 끝나자 근처 씨네숍으로 몰려가 곰돌이 푸 관련 상품을 구매했다.
20~40대 학생·직장인들은 영화가 끝나자 근처 씨네숍으로 몰려가 곰돌이 푸 관련 상품을 구매했다. /
표태준 기자
정겨운 추억의 친구들은 인테리어 시장까지 진출했다. 올해에만 가구 브랜드 소프시스와 인하우스, 코
튼빌, 가리모쿠 등이 곰돌이 푸나 미키마우스 같은 디즈니 만화 캐릭터를 내세운 의자, 침구류를 앞다
퉈 출시했다. 모두 사회 초년생이 대상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성장·취업난이라는 벽에 부딪힌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헬조선'
'꼰대'로 원망하며 조언을 구할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와 치열하게 싸
워야 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보다 어린 시절 동화 속 세계로 되돌아가 위안을 얻으려는 퇴행적 문화 현
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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