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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각서 받았던 IMF, 왜 그리스 빚은 깎아주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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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IMF 사태에 회사에선 정리해고가 단행됐고, 거리엔 노숙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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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난생처음 집안 소파나 가전제품에 '빨간딱지'가 붙는 상황을 목도해야했다. 우리에겐 IMF의 기억이 매섭기만 했지만, 지금 그리스인들에게는 마치 솜방망이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앉은 채로 당하기만 했던 한국이 바보같았던 걸까. 아니면 그리스가 너무 뻔뻔한 걸까.
취재=박승혁 기자 /
입력 : 2015.07.07 22:18 | 수정 : 2015.07.07 22:47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25%의 고금리, 대기업·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가혹한 조건들을 강요했다.
일각에서 “너무한다”는 비판과 함께 재협상론이 나오자 IMF는 당시 15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자금지원 협상 이행각서’까지 받아냈다. 과거 한국에선 이랬던 IMF가 지난달 26일 그리스의 부채를 30% 탕감해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IMF의 분석에 독일 등 다른 유럽 채권국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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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게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 그리스를 둘러싼 국제정치학적 차이, 사뭇 다른 문화적 배경, IMF의 부도 위기 국가에 대한 대응 전략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그리스가 경제공동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일원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문제를 잘못 처리했다가는 유로존뿐만 아니라 온 유럽이 수십년간 공들여온 유럽연합(EU)이 위태로워진다. 이 경우 그리스를 살리는 비용보다 더 큰 정치적·사회적 비용이 들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아시아 변방에 있는 고립무원의 채무자였지만, 그리스는 유로존이란 핵우산을 가진 힘 있는 채무자다.
또 다른 차이점은 그리스의 경우 채권단에 IMF외에 EU, ECB(유럽중앙은행), 독일·프랑스 정부 등 여러 주체가 얽혀 있어 채무자의 협상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리스에 지원해준 돈은 ECB(270억유로)가 IMF(210억유로)보다 많다. IMF가 주도적으로 그리스 협상을 몰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공식요청을 보도한 1997년 11월 22일자 조선일보 1면.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가 1998년1월12일 임창열 경제부총리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97년 12월 13일 주식시장은 전날 정부의 기업자금지원 활성화 방안과 IMF의 자금 조기 지원설, 대선후보들의 IMF준수 선언 등으로 이틀간의 폭락에서 벗어나 강하게 반등했으나 객장에 앉은 투자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않다.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1997년 12월 5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IMF자금지원 합의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IMF의 구제금융 지원 이후 1997년12월5일 주가가 오름세를 보인 가운데 증권사 객장에서 한 투자자가 관련 신문기사를 읽고 있다.
이경식 한국은행총재(좌), 임창열 경제부총리,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1997년12월3일 IMF긴급자금지원과 관련한 최종협상결과 발표자리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1998년 4월30일 공개된 '캉드쉬 IMF총재 면담결과 보고' 문건. 우리나라의 IMF 구제금융신청 협의 내용을 담은 이 문건은 1997년 11월19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에 보고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 약속에도 불구,한국의 외환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IMF의 무리한 요구와 한국 금융 당국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회의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사진은 1997년 12월 11일 한 국내은행 환전 창구 직원이 미국 달러화당 1천7백71원으로 치솟은 원화환율을 게시판에 새로 기재하는 모습.
임창열 부총리(오른쪽)가 1997년 12월 3일 정부제1청사에서 자신이 서명한 IMF 구제금융신청 의향서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에게 넘겨주면서 악수를 하고 있다.
IMF한파로 고객유치에 바빠진 1997년 12월 10일 서울 명동의 한 은행 앞에 걸린 광고.
1997년 12월 25일 서울 명동에서 행인들이 문턱이 높지 않다는 광고문안을 내건 은행앞을 지나고 있다. IMF구제금융 이전에 내건 이 광고문안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IMF구제금융체제가 대학가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1998년 4월 17일 연세대 도서관 앞에는 등-하교용 자전거와 오토바이들이 가득 세워져있다.
IMF구제금융체제가 대학가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1998년 4월 17일 서울 봉천4거리의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앞에는 학교와 봉천사거리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정부가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한 지 5주년이 되는 2002년 11월 21일 낮 서울 용산역 광장 앞에서 한 시민이 교회가 제공하는 무료 점심을 앉은 채 먹고 있다.
1997년 12월 2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열린 금융노련의 IMF 구조조정안 반대집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이 'IMF=나의 실직?'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IMF시대를 반영하듯 이대지하철역 부근에는 상호를 아예 ＂IMF드레스＂ 로 내건 웨딩숍이 등장했다.
1998년 1월 23일 IMF시대의 검소한 차례상 차리기 강의가 예지원 주최로 중구청에서 열렸다.
공동체의식 개혁 국민운동협의회가 1998년 2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IMF실직자를 위한 사랑의 봉급나누기운동'에 국민들의 적극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사무실의 학생현황판.왼쪽부터 학년별 재학생,휴학생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1998년 3월 현재,IMF한파로 인해 휴학생수가 작년보다 30여명이 늘어났다.
평소 차량으로 가득찼던 여의도 고수부지 주차장이 IMF의 영향으로 자동차 출퇴근 차량이 줄어들자 텅 비어 있다. 이전다음 1 / 20
1997년 한국은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서도 일부 지원을 받았지만 IMF로부터 가장 많은 195억달러를 받았다. IMF의 발언권이 셀 수밖에 없었다.
저자세로 일관했던 한국과 달리 그리스 정부는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면서 채권단을 괴롭히고 있다. 유럽의 정신적·문화적 고향이라는 점까지 이용해 “그리스 없이 유럽 통합은 없다”며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던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채무국이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틸 때까지 버틴 후, 부채를 최대한 탕감받는 것은 사실 아주 일반적인 전략”이라며 “금 모으기 캠페인까지 벌였던 한국은 매우 순진했던 편”이라고 말했다.
IMF는 한국에 강요했던 조건이 너무 가혹했다는 비판을 받고, 전략을 많이 수정했다. IMF 상임이사를 지낸 오종남 전 통계청장은 “IMF라는 의사가 ‘외환위기’란 병에 걸린 환자를 처음 보고, 무조건 가장 센 약을 먹인 셈”이라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IMF가 구제금융 3개월 만에 처방이 과도했음을 인정했을 정도로 우리에 대한 구조조정은 지나쳤다”며 “이후 IMF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최대한 각국 경제상황에 맞추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해 나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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