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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者와의 진실게임에서 지고 있는 8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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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8人만 담은 '成 리스트', 고도로 계산된 정치 승부수 洪지사 외엔 구체 정황 없지만 '무죄 입증 책임' 떠안긴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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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디지털뉴스본부장
입력 : 2015.04.17 03:20
李총리·洪의원 말바꾸기와 소소한 거짓말이 불신 키워
박정훈 디지털뉴스본부장 순수하게 법리(法理)로만 따진다면 '성완종 리스트'에 지목된 8인 정치인의 처지는 결코 불리하지 않다. 돈을 주었다고 폭로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더 이상 진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돈을 전달한 정확한 증거나 시점, 결정적 정황이 나온 게 없다. 설사 성 전 회장 말이 사실이더라도 현금으로 오갔기 때문에 흔적 찾기가 쉽지 않다. 검찰 내부에선 기소(起訴)도 하기 힘든 수사를 떠맡았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는 단순한 형사(刑事)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정권의 운명과 정계 지형(地形)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고도의 정치 사건이다. 성 전 회장이 그렇게 판을 짰기 때문이다.
그가 목숨을 던지며 남긴 메모는 대단히 '정치적'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역대 비서실장 전원과 총리를 포함한 친박(親朴) 핵심들만 족집게처럼 겨냥했다. 고인(故人)에게 실례일지 몰라도 성완종 리스트는 잘 계산된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란 느낌이 강하다. 어떤 이유에선가 8인을 '선별(選別)'해서 리스트에 올렸다는 뜻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성 전 회장은 여와 야, 친박과 비박(非朴)을 종횡무진하는 전방위 인맥으로 유명했다. 특혜도 지금의 야당 집권 시절에 훨씬 더 많이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경남기업을 인수해 전국구(全國區) 기업인으로 부상했고, 그 어렵다는 사면(赦免)을 두 번씩이나 받아냈다. 만약 그가 돈을 뿌렸다면 이때가 전성기였을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성 전 회장은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만 정조준했다. 대중 정서는 감성(感性)에 약하다. 성 전 회장이 죽음으로써 고발했으니 진실일 것이라 믿는 약자(弱者) 편향의 심리가 작용한다. 그 결과 지목당한 8인 쪽이 거꾸로 결백함을 입증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이들이 합당한 알리바이나 반증(反證)을 대지 못하면 의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돈을 안 받았음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사 법적으로 무죄가 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장당할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들로선 꼼짝없이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이게 바로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던져가며 구상한 최후의 필살기(必殺技)일 것이다. 그가 짠 진실 게임의 구조는 개미지옥과도 같다. 당사자들이 숨기려 하면 할수록, 거짓말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8인으로선 대단히 불리한 불공정 게임이다. 하지만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까놓고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차근차근 국민의 신뢰를 쌓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 루트다.
그러나 지금 게임은 100% 성 전 회장이 짜놓은 구도대로 진행되고 있다. 성완종이 지목한 8인이 스스로 자살골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8인은 이미 망자(亡者)와의 심리전에서 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자 8인이 똑같이 보인 첫 반응은 "고인과 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실을 말하기보다 꼬리부터 자르려 애쓴다는 인상이 역력했다.
이들의 해명은 그 후 드러난 사실들에 의해 속속 뒤집히거나 신빙성이 약해지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성 전 회장과) 소원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이 총리와 1년반 사이 23차례 만난 것으로 적혀 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행사에서 나란히 앉아 친분을 과시하는 동영상도 속속 나왔다. 이 총리는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있다. "안 했다"가 "조금 했다"로, "안 만났다"가 "기억이 없다"로 바뀌었다. 작은 거짓말이 쌓여 큰 거짓말쟁이인 듯한 이미지가 생겼다. 성완종 리스트가 사실일 것이라는 국민의 믿음도 더 굳게 했다.
홍문종 의원은 "동료 의원 이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성 전 회장을 1년반 동안 18회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비서실장 재임 중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는 김기춘 전 실장이나 "친분이 전혀 없었다"고 해명한 서병수 부산시장 등도 사정은 대략 비슷하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상황을 보면 "친하지 않았다"는 이들의 해명은 한낱 발뺌처럼 들린다.
증거가 없는 한 범죄 혐의자는 무죄(無罪)로 추정된다는 게 형사소송법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 성완종 게이트는 정반대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인이 무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사실로 간주되는 '유죄(有罪) 추정'의 가혹한 게임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니다" "모른다"거나 "친하지 않다"는 당사자들의 소소한 거짓말이 자살골로 돌아와 그런 상황을 자초했다.
출차;조선닷컴 박정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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