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타임즈
> 뉴스 > 사회
|
|
|
구급차 방패 삼아 끼어들기·불법 유턴… 도로에 '배려'는 없었다
|
[구급출동 6차례 동행취재… '길터주기'는 단 한번뿐]
|
남정미 기자
이벌찬 기자
입력 : 2015.03.28 03:00
[구급출동 6차례 동행취재… '길터주기'는 단 한번뿐]
사이렌 울려도 안 비켜줘… 수시로 브레이크 밟고 중앙선 넘나들며 '곡예 운전'
작년 출동 구급차 50%만 '골든타임'인 5분내 도착
지난 24일 오후 12시 12분쯤 서울 사당동 한 은행 앞에 50대 남성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1.5㎞ 떨어진 서초소방서 방배안전센터는 신고를 전달받고 곧바로 구급대원 2명이 탄 구급차를 출동시켰다. 거리상으론 도착까지 3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하철 사당역에서 이수역 쪽으로 넘어가는 동작대로 4차선에 들어서자 차들이 빽빽했다. 119구급차 운전자가 사이렌을 울렸지만 길을 터주는 차는 없었다. 시속 20~30㎞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16분. 신고가 접수된 지 4분을 막 지났다.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환자 노모(56)씨는 심정지 상태였다. 심정지 환자의 경우 4분이 지나면 급격한 뇌 손상이 시작돼 '5분'이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 구급대가 곧바로 노씨를 태우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출발했지만, 이수교차로에서 고속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사평대로에 꽉 찬 차들은 사이렌을 울려도 비켜주지 않았다.
지난 25일 사설 환자 이송 업체인 MT케어의 구급차가 출동 연락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하는 길이 꽉 막혔다. 앞차들이 길을 터주지 않거나 옆 차선 차들이 구급차 앞으로 끼어들기 일쑤였다. /장련성 객원기자
급해진 구급차가 중앙선과 1차선 사이에 노란색 빗금이 쳐진 안전지대로 진입해 속도를 올리는 순간 갑자기 하얀색 승합차가 불법 유턴을 하려고 끼어들면서 구급차와 그대로 충돌했다. 구급차는 덜렁거리는 오른쪽 범퍼를 매단 채 그대로 달려 12시 26분 병원에 도착했지만 환자는 8분 후 숨졌다. 이날 출동한 서초소방서 구급대원은 "사이렌을 울리고 달리는 구급차를 보고서도 불법 유턴을 하려고 끼어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응급환자들의 골든타임은 교통 상황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119구급차 이송 건수는 163만 1720여건으로 국민 31명 중 1명이 일 년에 한 번꼴로 119구급차를 이용했다. 이 가운데 70% 정도가 심정지 등 응급환자지만 지난해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인 5분 이내 현장 도착률은 51%에 불과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길을 트려는 구급차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사이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은 흘러가는 셈이다.
실제 본지가 지난 24~25일 119구급차와 사설 구급차의 출동에 동행한 결과 6건의 실제 출동에서 차량 운전자들의 길 터주기가 있었던 것은 딱 한 차례였다. 꽉 막힌 도로 사정을 감안해도 조금씩 양옆으로 길을 터주면 충분히 달릴 수 있었지만 비켜 주는 차량은 흔치 않았다. 간혹 몇 대가 비켜 줘도 끼어드는 차를 마주쳤다. 국민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일선 구급 소방관의 64%는 "일반 차량이 구급차 진행을 위해 비켜 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구급차는 피해줄 줄 모르는 차들을 피해 중앙선을 넘나들며 곡예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25일 오후 12시 27분 사설 환자 이송 업체인 MT케어가 백혈병 환자 최모(63)씨를 서울 성모병원에서 한양대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
지난 24일 심정지환자를 태운 119구급차가 서울 이수교차로에서 고속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가던 중 불법 유턴을 하는 승합차에 받힌 채로 병원에 도착했다. /시민 제공
환자와 구급차에 함께 탄 의사는 "환자의 통증이 심각하다"며 최대한 빨리 이송해달라고 재촉했지만, 시속 60㎞로 달리던 구급차는 5분도 안 돼 속도를 줄여야 했다. 반포대교 구간에서 봉고차 한 대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구급차 앞으로 끼어든 것이다. 강변북로에 들어서자 '모세의 기적'처럼 대형차들이 길을 터주기 시작했지만 '기적'은 1분도 안 갔다. 대형차들이 길을 터준 틈으로 다른 차선에 있던 택시가 끼어들었다. 구급차가 20초 동안 사이렌을 울리자 택시는 그제야 오른쪽으로 물러났다. 탑승하고 있던 응급구조사는 "다른 차들이 길 터주기를 하면 그 자리에 끼어들거나 구급차 뒤에 붙어서 가려는 얌체족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9시 39분엔 삼성서울병원이 호흡 곤란에 빠진 생후 4개월 된 아기를 다른 병원으로 빨리 이송해달라고 MT케어에 요청해왔다. 서울 성모병원 근처에 있던 구급차가 반포대로를 지나 사이렌을 켜고 88올림픽도로에 들어섰지만, 앞서가던 흰색 쏘나타 승용차가 좀처럼 비키지 않았다. 결국 1차선에 있던 구급차가 2차선으로 바꾸자 이번엔 3차선에 있던 흰색 아반떼 차량이 구급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구급차가 병원 입구에 도착할 때쯤엔 마주 오던 택시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급하게 차를 세웠다. 이 구급차는 신호 위반까지 해 6분 만에 도착했지만, 아기 엄마는 이미 다른 구급차를 불러 타고 간 뒤였다.
구급차 길 터주기가 정착된 캐나다는 41만~53만원의 벌금을 매기며 미국은 최대 83만원이다. 한국도 4만~6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길을 터주지 않은 걸 입증하는 게 쉽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일부 시민은 간혹 환자 이송이 아닌 콜택시 용도로 악용되는 사설 구급차들 때문에 일부러 길 터주기를 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며 "설령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 해도 진짜 위급한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협조해줘야 한다"고 했다.
출처;조선닷컴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