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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와 민경윤의 ‘갑질’ 무엇에 분노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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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부의 ‘갑질 횡포’부터 분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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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란 원래 주종관계나 상하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전에도 나와 있듯 계약서상 계약의 당사자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는 수평적 관계를 의미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간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히면서 갑을관계가 마치 강자와 약자의 관계처럼 변질됐지만 본래 의미는 그렇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램프 리턴 사건을 ‘을에 대한 갑의 횡포’ 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건 바로 이런 점에서다.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여객기 서비스 원칙의 문제다. 사무장 박씨가 대한항공의 서비스 원칙을 어겼고 이를 간과해선 안 되는 기내서비스 담당 부사장인 조현아는 이 문제를 지적했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 대한항공과 사무장 박씨는 이런 원칙을 포함한 근로계약을 맺은 관계에 불과하다. 박씨는 자신이 원하면 얼마든지 사표 쓰고 퇴사할 수 있는 것이고 대한항공은 그에게 노동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관계에서 벌어진 원칙의 문제를 두고 어떻게 ‘수퍼 갑의 횡포’라고 할 수 있나.
이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이 무릎 꿇게 했다느니, 모욕을 줬다느니, 밀쳤다느니 하는 것도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 그건 별개로 따져야 할 문제다. 재벌3세의 행동에 분개하는 많은 국민과 당사자인 박 사무장의 심기는 건드렸을지 몰라도 분명한 건 애초 원칙을 어긴 당사자는 사무장이었다는 점이다. 무릎을 꿇리고 심하게 모욕을 당했다고 분기탱천하지만 그것도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일반 식당에서 5천 원짜리 밥을 먹어도 서비스가 형편없으면 손님이 주인을 불러 호통을 친다. 그런 일에 “손님이 갑질한다”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일은 얼마나 합리적일까. 과연 식당 측의 잘못은 없나. 하물며 무려 1천만 원이 넘는 여객기 1등석 손님에 대한 서비스 문제 아닌가. 기내 서비스 원칙을 어긴 사무장을 심하게 나무랐다고 해서 그게 ‘수퍼갑의 갑질’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만일 이후 사건 전개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 측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처벌하면 될 일이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않고는 갑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뒤늦게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을 거론한 건 과연 진정한 ‘갑의 횡포’란 무엇이냐는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갑질한다”고 융단폭격을 맞는 조 전 사장을 보면서 그가 했다는 갑질이 정말로 갑질이 맞느냐는 지점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작은 한숨이 나온다. 우리는 왜 작은 일에만 그토록 분노하는가. 직무에 소홀했던 여객기 사무장이 오너 3세로부터 모욕적 취급을 받았다고 여론이 온통 흥분하는 걸 보면서, 현대증권 노동조합 안에서 벌어진 진정한 갑의 횡포에는 무관심한 여론의 두 얼굴이 무섭기까지 하다. 조합원들이 땀 흘려 벌어들인 월급에서 떼어낸 조합비를 조합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썼다는 의혹으로 고소까지 당하고 여전히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한 사람의 독재자, 그의 전횡에 대해선 무덤덤한 여론 말이다. 대한항공 재벌3세를 향한 우리 국민의 그 지독한 평등의식이 왜 현대증권 노동조합과 같이 평범한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불평등, 권력의 횡포에 대해선 마비되는가.
민경윤 전 위원장이 현대증권 노동조합을 이끌어 온 행태야 말로 수퍼갑의 횡포 그 자체였다. 그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조합원은 현대증권 안에서 임원을 비롯해 조합원 그 누구도 민경윤 위원장에게 반기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피땀 어린 수십억원의 조합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감히 물어볼 생각도, 따져볼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그의 눈 밖에 날 경우 어떤 보복이 있을지 두려워했기 때문이란다. 대한항공과 조현아 수사에 열심인 검찰은 정작 이런 사건엔 팔짱을 끼고 있다. 그야말로 갑을관계도 아니면서 가장 평등하고 민주적이어야 할 조직에서 대통령보다 더한 권력자로 조합원들 위에 군림했던 자에게 한없이 너그럽다. 민경윤이 회계장부를 수개월동안 사실상 빼돌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조합원들에게 ‘당신들이 횡령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회계장부 전수조사가 필요함에도 ‘회계장부 3개월 치를 무작위로 조사해보니 문제없더라.’는 식이다. 그 누가 이런 검찰 수사에 대해 신뢰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갑질의 횡포란 다른 게 아니다. 정상적인 계약관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위들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순 있어도 그것을 일방적인 횡포로 볼 순 없다. 대한항공 부사장인 조현아가 고용관계인 사무장의 서비스 원칙을 어긴 것을 지적한 것이 그 예다. 그 과정에서 사무장은 모욕감을 느꼈다거나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자기 뜻대로 당장 고용관계를 끝낼 수도 있고 법에 호소할 수도 있다. 문제는 민경윤 전 위원장과 같은 ‘갑질’이다. 노조위원장으로서 그는 권력을 제멋대로 독점하고 조직을 자신의 발아래에 뒀다. 그의 부당한 전횡에도 조합원들이 딱히 어디에 호소할 방법조차 없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갑질’이고 ‘수퍼갑의 횡포’다. 강자의 횡포에 맞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자는 노동조합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런 갑중의 수퍼갑의 횡포에는 침묵하고 재벌3세의 철없는 행위에만 들끓어서는 ‘갑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곁, 우리 안, 정작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않고 갑질을 따지는 건 허망한 일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출처;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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