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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보다 더 나쁜 매국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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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논설실장
최근 ‘매국(賣國)’을 새삼 상기시키는 일이 있었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돼 수사받던 국가정보원 요원이 자살을 기도하기 직전에 남긴 말 때문이다. 그는 운동권 출신 야당 의원 이름을 거명하며 “국회에서 이 영사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 뒤 민주당 의원들 여러 명이 불어댔다. 노출되면 안될 은닉요원인데,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한 행위”라고 분개했다. 피의자 신분인 만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블랙요원을 공개하고, 정보기관 역량을 훼손시킨다면 매국 행위임에 분명하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매판(賣辦)’이란 말이 널리 사용됐다. 원래 청나라 말기 중국에 진출한 서방 국가들의 공관이나 상관(商館)에 고용된 중국인이라는 의미였지만, 외국과 결탁해 조국 이익을 해치는 사람이나 행위로 확대됐다. 잘나가는 기업들에 대해 매판자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선진 자본주의 수탈 구조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며 혁명을 통해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횡행했다. 최고 기업인이 강연하는 자리에 난입해 ‘매판자본 물러가라’며 시위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그랬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역으로 매국노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나라를 망치기에 앞장선 사람들이 조선이나 청나라 말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완용은 망해가는 나라에 마지막 칼질을 한 셈이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이뤄낸 나라에서 지금도 그런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죄질이 훨씬 나쁘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매국 형태도 다양해졌다.
선거 민주주의 국가에서 포퓰리즘은 최악의 매국이다.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다. 이미 많은 나라가 이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더 심각한 죄상은 국민을 나약하게, 의존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파산은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지만 국민 정신이 무너지면 복구가 어렵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최악의 포퓰리즘 선거였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을 묶은 ‘3무 1반’ 시리즈 등이 난무했다. 불행히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포퓰리즘 광풍 조짐이 보인다. 공짜 버스 공약이 나왔고, 무료 건강검진, 무료 데이터통신, 무료 예방접종, 입학금 폐지에다 주거비까지 거저 대줄 것 같은 주장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복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시급한 곳부터, 감내할 수 있는 속도로 해나가야 한다. 공약은 세금+α다. 복지혜택을 확대하면 수요 자체도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부(富)를 늘리고, 세금을 더 내야 복지와 안보도 가능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잘살아보세’‘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일궜다. 이런 위대한 국민성까지 망가뜨리는 포퓰리즘 선동가는 청나라 말기의 마약 상인과 다름없다.
국익을 외면하는 정치도 매국이다. 최근 원자력방호방재법 소동이 대표적이다. 국회 처리를 방치한 여당과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여당의 발목을 끝까지 잡고 늘어진 야당은 더 나쁘다. 국익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등 방송법 개정을 빌미로 입법 절차를 전면 사보타주하고 있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매국 정치’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사악한 독재 왕조 편을 드는 종북(從北)도 매국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해 놓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히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통진당은 천안함 폭침 4년을 맞아 ‘천안함 사건’이라고 부르며 북한에 희생자 위로를 제안했다.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처럼 꾸미고, 북한 책임을 적시하긴 커녕 남한을 위로하는 관대한 집단처럼 비치게 하려는 의도가 짚힌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숙주 노릇’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방문국인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국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크라이나의 상반된 모습은 현명한 국민, 올바른 지도자, 부강한 나라의 중요성을 거듭 일깨워준다. 현대판 매국노들을 척결하고 반듯한 국가를 만들 것인가, 반대로 이들이 판치는 망국의 길을 택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다시 기로에 서 있다.
출처;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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