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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국회청원' 민의 깔아뭉개는 의원 나으리들국민이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헌법상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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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접수된 127건 중 채택 1건 108건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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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0 09:27
쇄하기이슬기 기자(wisdom@dailian.co.kr)
국회의원실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바로 민원인.
그런데 이때 ‘민원’의 의미는 대부분 공식화되지 않은 채널이다. 사적 인맥이나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개인 또는 집단의 이권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을 찾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공공성을 기초로 법적 절차를 밟기보다는, 소위 ‘힘깨나 쓰는 이들’의 비빌 언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국회 문턱은 너무 높다. 심리적 거리가 만드는 문턱이라고만 해두기에는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1항이 무색할 정도다.
이 문턱을 제도적으로 낮추기 위한 것이 ‘청원’이다.
헌법 제26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동시에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또한 법률 제8171호 ‘청원법’과 제12108호 ‘국회법’에서도 각각 청원의 종류와 방법 및 심사규정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회규칙 제93호에서는 ‘국회청원심사규칙’을 따로 두어 국회법의 규정을 보충한다.
청원을 원하는 국민은 먼저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청원제출용지, 청원소개의견서, 청원서 각 3부를 작성한 후, 국회 사무처 의정종합지원센터에 직접 방문하거나 소개받은 의원실을 통해 제출하면 된다.
이렇게 제출된 청원은 내용에 따라 해당 상임위원회로 회부된다. 소관 위원회는 청원심사소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청원을 상정·의결한 후 본회의에 부의하거나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 폐기한다. 이후 본회의에서 심의를 거쳐 정부로 이송, 국정에 반영된다.
제도적 절차는 물론 공공성과 타당성 등의 명목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비공식적·사적인 각종 민원과는 크게 구분된다.
127건의 권리, 침묵하는 108건의 의무
문제는 이처럼 제도화 된 국민의 권리가 제대로 누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처리율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게재된 바, 19대 국회 기간 국회청원 접수는 총 127건. 그 중 채택은 단 1건, 동일한 취지의 법안이 이미 반영됐다는 등의 이유로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은 것은 16건, 자체 철회 2건으로 19건이 처리됐을 뿐이다.
그나마 채택된 안건은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8월 소개한 ‘울산 혁신도시의 고가차도(서동고가차도) 건설 반대 및 평면교차로, 지하차도 건설 촉구’안. 정 의원의 지역구인 울산 중구 관련 법안이다.
결국 처리율은 겨우 14.9%, 나머지 85.1%에 해당하는 108건은 언제 이름이 불릴지도 모른채 계류 중이라는 뜻이다.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게재된 바, 19대 국회 기간 국회청원 접수는 총 127건. 그 중 채택은 단 1건, 동일한 취지의 법안이 이미 반영됐다는 등의 이유로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은 것은 16건, 자체 철회 2건으로 19건이 처리됐을 뿐이다.(자료사진)ⓒ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실제로 18대 국회에 청원 접수된 272건 중 203건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청원법 상 △90일 이내 처리결과를 청원인에게 통지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도 최대 60일, 1회에 한해 처리기간을 연장하고 청원인에게 즉각 알려야 하지만 본회의에 회부되는 확률 자체가 너무 낮은 데다 국회 임기가 넘어가면 소개 의원도, 해당 상임위도 책임지지 않는다. 폐기되면 그만이다.
결국 현재 계류 중인 안건들 역시 18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결정적으로 청원이 상임위에서 ‘언제’ 논의될지 여부는 여야 간사가 합의한다. 다음 상임위 일정을 조정하는 동시에 접수된 청원을 포함시킬지, 그게 아니라면 얼마 뒤에 논의할지는 전적으로 상임위 간사들 손에 달려있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법안이 산적한 마당에 청원까지 매번 다루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청원은 법안 심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도와 중요도에서 밀리기 일쑤다.
이에 대해 한 보좌관은 “물론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법안 수정에 비해 청원이 가지는 역할이 분명 약하다. 의원들 입장에서도 중요도와 관심도 모두 떨어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의원실도 할 말은 있다. 청원을 접수한 단체나 개인들이 사적인 이권에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킬 목적으로 청원을 내는 수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타당성이나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서류접수한 민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국회사무처의 한 직원은 “사실 현실성 없는 것도 많고 그저 개인 사업 확장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법을 고쳐달라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결국 의원들부터도 청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니 이를 이용하는 국민의 접근성과 이해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보와 처리규정 강화 필요, "청원 활성화 돼야 소통 투명해져"
물론 일반 법률도 처리 기한은 없다. 임기가 만료되면 폐기된다. 하지만 선거로 대표성을 가진 의원이 발의하는 법과는 달리, 청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직접적’ 권리다. 국회가 청원 처리 기한 등에 현재보다 좀 더 엄격한 규정을 마련해 강제성을 둬야할 명분이 충분한 이유다.
법률로 정한 각종 규정이 있음에도 대부분 임기만료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현재 국회의원에게 당연한 의무를 지우는 법적 장치가 상당히 미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15년 전 사망한 여대생 아버지의 청와대 민원 사건'을 언급하면서 청와대가 크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1998년 여대생 정모 양이 성폭행 당한 직후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으나 당시 대구 달서경찰서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 유가족이 끈질기게 수사를 요구하며 지난해 5월 청와대에 진정서를 넣었다. 이에 대통령이 대구지검에 사건 재수사를 지시, 결국 사건이 해결됐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15년 된 살인사건도 해결하는데 국회는 임기 내 청원조차 처리하지 못해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 야당 의원실에 근무하는 보좌관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청원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이자 국회의원의 의무”라며 “굉장히 강력한 제도인데도 의원도, 국민도 그 무게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차원의 홍보도 요구된다. 선거 때만 되면 부르짖는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유권자가 입법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루트를 통해 청원을 알림으로써 ‘권리를 행사하라’고 독려해야 한다.
실제 계류 안건 중에는, ‘독도 주민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2014.1.9. 접수), ‘독도의 날 제정’(2012.10.25. 접수)과 같이 최근 일본의 도를 넘는 독도 영유권 주장에 따라 국민적 관심과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것들도 포함돼 있다.
또한 정치 불신의 주요인인 의원들의 특권 오남용을 막기 위한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2013.5.23. 접수), 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로 어려움에 처한 청년세대를 위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법률안’(2013.8.19. 접수) 등은 하루라도 조속히 처리돼야 할 내용들이다.
진정한 소통의 전제는 절차의 투명성이다.
대부분 사적인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민원은 이권이 개입돼 의원과 민원인 간의 은밀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쉽다. 공식적 창구가 아니므로 비리나 의혹이 싹 틀 여지가 농후하다는 것이다. 반면 공식화된 채널인 ‘청원’이 활발해지면 이권 개입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한 의원실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의원도 자기한테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이 사람 것은 꼭 들어 줘야 내가 이익을 얻겠다’ 하는 경우에 더 적극적으로 듣지 않겠느냐”라며 “청원인 스스로도 공식 문서에 접수하기 위해 목적이 떳떳하고 공공성을 갖는지 한 번 더 진지하게 자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청원이 활성화되면 그런 절차가 투명해질 거다. 보좌관들은 더 귀찮아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옳다”라고 밝혔다.
의원실에서 조용히 이뤄지는 민원이 아닌 청원의 활성화야말로 여야 정치권이 서로를 향해 그렇게도 손가락질 하며 자신하는 ‘진짜 소통’의 발판이 될 것이다.[데일리안 = 이슬기 기자]
출처;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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