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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勞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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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일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꿔버린 일이 있다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의 경우는 그것이 지극했던 사랑에 관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는 종교에 관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내게는 흙바람 날리던 1984년의 봄이 그러한 특별한 의미를 준다. 수 십년간 영위해오던 가업(家業)으로서의 企業이, 매일 친숙하게 웃으며 함께 하루 일을 시작하곤 하던 그 공원(工員)들에 의해 이유도 알 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파업으로 소요가 시작된 때였기 때문이다. 아,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이 사건은 나로서는 정말 다시 떠올리기조차도 싫은 악몽(惡夢)이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봄이 오니 변함 없이 되살아 나는 것이다.얼마 전 올린 어느 詩의 글귀와 같은 바로 그 ‘봄 슬픔’같은 것일 터이다.
지금은 작고(作故)하신 선친(先親)께서 1967년에 창업한 우리 회사는 70년대 동업계 수출 1위 내수 2위로 인천시 부평에 공장대지 약 2000여평을 가진 중견 제조업체였다. 당시는 산업계 전반이 자동화 시설이 거의 없던 상태라 우리 또한 생산현장 공원 약500명과 사무직 사원 100명 정도의 人力에 의존하던 실정이었다.
봄의 어느 날, 아침 7시면 어김 없이 출근하던 공원들이 열댓명 정도 밖에는 나오질 않았다. 너무도 놀란 회사는 공장간부들에게 급히 연락해봤으나 다들 영문을 몰랐다. 사무직 사원들과 더불어 전 회사간부들이 총동원되어 공장 근처에 기숙하던 공원들을 찾아가 사정을 알아봤지만 분명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각 직원들을 설득하여 생산현장에 복귀시키고 나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수출물량은 밀려있고 공급이 부족한 시장상황이었는데 단 한 시간이라도 생산작업에 차질이 생기면 큰 낭패였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라 생각됐다. 철야작업을 해서라도 충당할 길은 있기 때문이다. 이는 YH사건 몇 해 전의 일이다.
그러나 다음날도 이 현상은 반복되고 시간이 흐르자 단지 파업만이 아니라 폭력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원들 일부가 공장 내는 물론, 사무실 의자마다 책상마다 붉은 페인트를 들이부어놓고 건물 벽에는 회사를 비방하는 욕설을 써놓는가 하면 출근한 사무실 직원들에 대한 막무가내 행패가 시작됐다. 평소 그렇게 다정하고 친밀한 사이로 생각했던 저들이 왜 일순간에 저렇게 표변하는지 참으로 당혹스럽고도 난감했다. 이런 일들이 보름 이상 지속되자 이젠 저들과 싸우는 수 밖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날짜가 지날수록 판매할 제품재고는 바닥나고 회사는 수출 클레임 사태 속에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당시 노동청과 경찰 검찰에 신고를 하고 조치를 취해봤지만 그들이 도무지 적극적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산업장 내 분규에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몸 사림 기색이 역력했다.
분규 속에 하루하루를 정신 없이 보내고 나니 몇 달이 금방 흘러버렸다. 그 동안 검찰로부터 알게 된 사실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된 기록이 있는 서울대 출신 청년 2명과 역시 같은 이력의 연대인지 고대인지 기억이 희미한 출신 2명이 위장취업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이 회사에 ‘취업’하여 임의로 ‘노조’를 결성하고 공원들을 대상으로 불만을 선동하는 은밀한 공작의 결과가 이 사태였음도 밝혀졌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도시산업선교회가 지목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공기관(公機關)은 아무도 이 사태에 나서주지를 않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나의 젊은 시절의 그 대처방법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기도 했다. 회사 정상화를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은 100여 가지가 됐다. 우리는 그 중 말도 안 되는 헛소리 90여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수락, 합의했다. 다음날부터 정상출근하기로 서로 합의문도 작성하고 헤어졌다. 그 동안의 피해가 컸지만 그래도 이제 다시 전처럼 공장가동이 될 수 있으니 밀린 제품도 생산하고 수출도 재개하고 밀린 임금도 지불하고,,,그날 밤은 아주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다음날, 어이없게도 노조는 열댓명이 공장 지붕 위에 올라가 일렬횡대로 서서 신나통을 들고 새로운 요구조건을 구호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공장철문이 닫힌 상태로 철문 밖으로는 경찰 100여명이 대치했다. 당시는 몰랐지만 후에 알아보니 그들 배후로부터 투쟁방법의 변경지시를 하달(下達) 받은 것이었다. 점입가경이라고 해가 바뀌도록 이렇게 해서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번에는 당시 야당 인사 열 두어명이 공장 현장을 찾아와 그놈들을 ‘격려’하고 갔다. 그 중에는 김영삼도 있었다.
상황으로 보나 여건으로 보나 이제는 노조들에 무슨 수를 쓴다는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은 파멸로 급 피치를 올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믿었다. 불의는 정의 앞에서 결국은 스러진다는 내 신념을. 어쨌건 노조가 발광을 하는 중에도 나는 나대로 회사를 살릴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았다. 이곳 저곳 금융권과 지인들을 통한 회사 회생방안을 찾고자 팔방으로 헤매고 다닌 것이다. 勞組와 그 배후세력이 시키는 똥개 훈련을 멋도 모르고 열심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울대로 기운 회사를, 당시만으로도 가치가 상당했던 공장 ‘땅값’을 제외하고는 회사자체를 되살릴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인수를 할 제삼자들로서는 제조기술과 노하우에 관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정확히 말하면 공장 땅을- 팔아 치운다면 우리집안 개인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20년간을 창업과 발전으로 땀 흘리신 창업주 先親으로서 이는 꿈도 꾸지 못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파업이 나중에는 태업형태로 변환되기도 했다. 그들은 아예 작업을 하지 않기보다 어느 정도 작업에 응하면서 생산 마지막 공정에서 완성된 제품을 깨버리는 수법이었다. 이는 차라리 작업을 하지 않는 것보다도 회사에 더 큰 자금 피해를 유발시켰다. 작업을 중단시키거나 타협 또는 방치 등의 이런 일들을 반복해오면서 시간은 1986년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私財를 다 털어가며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여 회사를 다시 살릴 방법을 찾느라 동분서주하던 때였는데 무엇보다 갈수록 누적되는 임금체불이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이미 때는 늦었다. 회사의 목숨이 마지막 단계까지 다다른 어느 날 勞組측에서 우리 집을 찾아와 ‘협상’을 하자고 했다. 1986년도 말의 일이었다.
나는 협상을 거부했으나 그들은 ‘양측 다 죽을 이런 사태가 그 누구한테 좋겠느냐’는 희한한 말을 하더니 회사주식을 다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협상이란다. 회사를 다 망가뜨려놓고서 20년간 땀으로 일궈놓은 회사를 내놓으라는 것이 협상인가. 정확히 공산당만큼 악랄했던 그 놈들은 짐승이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쓰는 주식을 개떼들에게 줄 수는 없다”. 그런 입장을 본 노조 대표들은 말 없이 물러갔다. 그리고 회사는 완전 거덜이 나고 그때까지 모든 개인재산도 회사도산을 막기 위해 하나 남김 없이 다 소진돼버렸다. 남은 것은 체임과 함께 거대한 은행 빚 뿐이었다. 1987년 회사는 공식적으로 파산했다.
실직하게 된 공원들 몇 명이 나를 찾아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경제적 급박함에 몰린 어려운 가정사정도 호소하며 밀린 임금 일부라도 개인적으로 좀 해결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나는 지금도 왜 그들이, 勞組의 이름으로 파멸을 자행한 노조집행부에게 그토록 어리석게 속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으리라. 어쨌거나 나는 파산한 회사가 더 이상은 아무런 지불능력이란 없던 현실이었으므로 그나마 내 통장에 있던 얼마간의 돈을 몽땅 다 그들에게 건넸다. 내가 한 푼 남기지 않고 전부 줘버린 것은 正義가 오늘 이대로 주저앉지는 결코 않을 것이라는, 머지 않아 반드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젊은 날의 순진한 믿음 그 하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난 正義란 것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조차 없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 사회풍조를 따르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재기를 꿈꾸시던 선친은 끼니를 걱정하고 버스비 신경 쓰는 가족을 남기시고 화병으로 마침내 작고하셨다.
개인의 신상을 지루하도록 쓴 넋두리 같은 내용이 부끄럽다. 그러나 이것은 勞組에 관한 살아있는 하나의 증언이다. 그렇다고 30년간 노조가 더 합리적으로 변했는가하면 실상은 전혀 그 반대이다. 더 극렬해지고 더 포악해지고 더 악랄해졌다. 범 종북좌파 정치권의 엄호와 중도 나부랭이들의 기회주의적 처신 때문이다. 한국의 모든 노조가 다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태평스런 사람들 인식이 저들로 하여금 더욱 그릇된 정당성을 가지게 만드는 하나의 큰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의 모든 勞組는 운동권과 정치세력에 깊이 연관돼있다. 정성남씨 가족의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경우라던가 부당한 勞組행태에 대해 분노와 비판을 해온 폴리뷰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겪어보지 않고는 결코 다 알 수 없는 勞組라는 것의 본 모습을 조금이라도 밝은 햇빛 아래로 끌어와 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시판에서 하기 좋은 말만 할 게 아니라 이 나라 국민이라면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勞組 悲劇’에 대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고 동참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 아니겠는가를 절실히 되 깨닫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노 정권 이래로 한국군은 분명 군인정신이 많이 퇴색한 면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軍 작전지휘에 가장 우수한 인물위주로 임무를 맡겨야 할 일이다. 사사건건 후보자 결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하는 지혜가 아쉽다. 글로써야 무슨 말인들 못하랴. 武와 달리 그것이 文의 특징이기도 하다. 유사시, 옆에서 포탄이 떨어진다고 가정한다면 그때는 골프나 이러저러한 흠집보다 우리를 지킬 수 있을 전문적 군사식견과 야전 지휘력 그리고 한미연합사의 경험 등에 관한 절대적 중요성이 비로소 실감나게 될 것이다. 敵의 총탄은 모든 종교 經典도 간단히 관통한다. 한국에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 총탄은 펜보다 강하게 된다. 책임질 아무런 구애 없이 글로서만 온갖 비판을 능사로 아는 ‘文’派들에 대한 거부감이 사실 크다. 가만히 앉아 비판만 하는 것은 얼마나 편하겠는가. 정치에서 여.야가 그렇고 게시판에서 그러하고 한국의 勞組 또한 바로 그런 모습인 것이다.
잠시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집안의 전 재산과 그리고 직장을 부당하게 잃어버렸던 순수했던 600명의 직원들, 그들 가족까지 합한다면 수 천명의 생계를 잘라버린 저들 악행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흘렸던 사람들의 눈물은 그 누가 책임을 질까. 세월이 흘렀다고 그 눈물을 잊는다면 그 누구인들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수 백명 근로자들 일자리를 악마의 포식처럼 삼켜버림으로써 그들 생계의 줄을 끊어버린, 그리고 단지 社主라는 이유로 근로자 선동을 통해 내 인생을 절벽 아래로 밀어뜨린 勞組라는 것과 그 배후를 내 평생 결코 잊지 못한다. 자연을 사랑하며 그저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아가던 농부가 이념의 파도에 휩쓸려 멋 모른 채로 일생을 희생당하는 게오르규의 ‘요한 모리츠’와 똑 같은 비극이 우리 산업계에도 3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만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勞組라는 이름의 가면(假面)을 쓰고 正義를 사칭(詐稱)하는 한국산 怪物이 변함 없이, 오히려 더욱 진화된 모습으로 건재하며 날뛰고 있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저절로 탄식하게 만든다. 이들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반드시 바로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 또한 더불어 일으켜준다. 한국의 ‘勞組’에 대해, 正義가 不義를 퇴치하게 된다는 30년 전의 헛된 내 믿음이 내 죽는 날 이전 어느 날에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도록 나는 남은 생을 두고 반드시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폴리뷰 토론방 - 산하 - 님의 글입니다.
출처 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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