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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당선인 흔드는 바람 붙드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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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진짜 고비는 人事보다 공약 재조정이젠 정직하게 국민 믿고 그 뜻 따르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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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주필
입력 : 2013.01.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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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주필
박근혜 당선인을 우리가 나서서 지켜주자고 한다, 당선인을 일부러 깎아내리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국민 1577만3128명이 왜 '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줬는지 이해해야 우리의 활로(活路)도 뚫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친야(親野)·진보·좌파 인사들이다. 이 목소리가 그쪽 집안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한다고 할 순 없지만 일정한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다. 엊그제까지 '박근혜 후보 당선은 나라의 대재앙(大災殃)'이라던 사람들 목소리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아무튼 희한한 풍경이다.
당선인과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다던 사람들이 어쩌다 당선인을 결사 옹위(擁衛)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까. 그쪽 이야기는 나라와 국민보다 제 밥그릇을 지키려 안달하는 기득권층과 정치 사기꾼들이 복지 공약을 뜯어고치라고 당선인을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짐작이 가겠지만 이 자청(自請) 경호대의 태도는 어딘가 수상쩍다. 당선인을 지켜주겠다는 사람들이 복지 공약에 함부로 손을 댔다간 국민적 저항을 부르리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더 험악하다. 박근혜 정권은 복지 공약 변경에 대한 국민 저항을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제압하려 하겠지만, 그런 시도는 확실하게 실패할 것이고, 그 결과 박근혜 정권은 식물 정권으로 굴러 떨어지거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中途下車)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요즘 TV에서도 당선인 얼굴을 마주치기 힘들다. 자택에 '인사 칩거(蟄居)' 중이라고 한다. 국무총리·비서실장·장관·수석비서관을 고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물망에 오른 인사를 검증하는 데 정부 공식 기구의 도움을 받는지 안 받는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니 구중궁궐(九重宮闕)이 따로 없다. 중요한 자리에 앉힐 유능하고 입 무거운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선거 때 공(功) 세웠다고 자라목을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발길에 차이니 고민이 깊을 것이다. 자칭 수훈갑(殊勳甲) 선거 유공자들을 일단 뒤로 밀쳐 놓았다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지난 정권 첫 조각(組閣)처럼 '박근혜 인사는 무슨 무슨 인사'라고 불도장이 찍히는 날이면 그걸로 정권은 치명상을 입는다. 그렇다고 좋은 사람 골랐다 해서 정권이 해결할 문제가 쉬워지거나, 문제를 푸는 열쇠가 같이 굴러들어 오는 일은 없다. 무난(無難)하면 잘됐다고 봐야 하는 게 인사다. 인사 효과는 반짝하다 사라진다. 진짜 고비는 인사 너머의 공약(公約) 고비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공약이란 이름으로 국민에게 큰 말빚을 졌다. 선거 전날엔 '군 복무 기간 18개월로 단축'이란 급전(急錢)까지 융통해 썼다. 빚 얻어 쓰기는 문재인 후보가 더 많이 얻어 썼지만, 문 후보는 낙선과 동시에 채무 상환 의무에서도 해방됐다. 느닷없이 당선인이 곁에 나타나 공약을 지키면 신변을 자기들이 지켜줄 거고 공약에 손을 대는 날이면 정권이 요절날 줄 알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은 어딘지 얼굴이 익다. 바로 문 후보가 빚 얻을 당시 연대보증을 섰던 공동 채무자들이다.
당선인은 선거가 끝나고도 몇 번이나 말빚을 갚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인수위원장을 대신 내세우기도 했다. 그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문 후보 빚보증을 섰던 사람들이 채권자 시늉을 하며 들이미는 것도 이 말의 목록(目錄)이다. 이게 당선인 마음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약속과 신뢰로 버텨왔다는 당선인에게 말빚은 그냥 빚이 아니다. 박근혜 정치의 성패(成敗)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선거 때 누군 그런 말빚 안 졌느냐"며 지금이라도 채무 상환 능력 한도 내에서 '서둘러 갚아야 할 빚' '천천히 갚아도 되는 빚' '감당 못 할 빚'을 가리고 거르라는 건 당선인 처지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나라 전 재산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현재 수중에 있는 돈, 앞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돈과 말빚을 갚는 데 들어갈 지출을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정확한 세목(細目)을 내놔야 한다. 여기서 공연히 헛 폼을 잡는 건 금물(禁物)이다. 국민은 척하면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본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한테서 얼마씩 모두 얼마를 세금으로 더 거둘 수밖에 없다는 진실도 고백해야 한다. 말빚을 다 갚고 나서 5000만 국민이 앞으로 먹고살 살림 밑천이 남는지 안 남는지도 계산서를 뽑아야 한다.
칼날을 보였다 감췄다 하며 당선인에게 공약 준수를 다그치는 사람들은 진짜 채권자가 아니다. 빚 독촉 자격이 있는 정당한 채권자는 국민뿐이다. 문 후보 빚보증을 선 사람들이 만든 신문 올 1월 1일자엔 국민의 66%가 다음 정부가 무엇보다 서둘러야 할 과제로 '일자리 만드는 성장'을 꼽았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이런 국민을 믿고 그 뜻을 따르는 길 말고는 달리 출구(出口)가 없다. 정권의 운명보다 몇백 배 소중한 나라 운명이 여기 걸렸다는 걸 직시(直視)해야 한다.
출처;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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