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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네의 과거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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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날 짜 2012/05/01 (07:01)
또래뻘 두 여인. 한 사람은 당시 '청와대 안주인'이나 다름없었고
다른 여인은 중정 비밀파티장의 비밀가수였다.
최근 ‘전투 모드’에 돌입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이런 얘기를 했다. “저와 새누리당은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성큼성큼 미래로 나가겠다.”
박근혜, “잘못된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미래로 나가겠다”
또 불리한 총선 판도를 의식해서인지 “이번 4월 총선은 과거에 묶이고 과거를 논박하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가는 선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마치 과거를 지워버리겠다는 말로 들린다.
박근혜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어제(14일) 연예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 심수봉이다. 심수봉과 박근혜는 서로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다.
박정희의 마지막을 현장에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이 심수봉이다. 10.26 궁정동 안가 박정희 총격사건을 조사했던 전두환은 “대단하다. 남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용기를 내서 현장정에 남았다”며 심수봉에게 용돈을 건넸다는 일화가 있다.
가수 심수봉 얘기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근혜의 ‘과거를 단절하고 미래로 가겠다’는 말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책임한 가를 지적하고 싶기 때문이다.
‘잘못된 과거’의 피해자 심수봉
박근혜는 52년 생, 심수봉은 55년 생. 세 살 차이이니 또래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두 여자의 삶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 사람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절대권력자의 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미8군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무명 가수였다.
일본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잘 불렀던 심수봉은 21살 되던 1975년 이런저런 인연으로 ‘궁정동 안가’에 발을 디딘다. 본인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따라 나섰다”고 술회하지만 그 자리가 심수봉에게는 평생 씻지 못할 ‘주홍글씨’가 된다.
한 여자가 독재권력자의 ‘주색파티’에 나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를 때, 다른 한 여자는 육영수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사실상 ‘영부인’의 위치였다. 어린 나이에 권력자에게 노래를 팔아야 했던 심수봉의 처지와 ‘청와대 권력’의 2인자였던 박근혜의 입장과는 말 그대로 천양지차였다.
또래뻘 두 여인, ‘궁정동 비밀가수’와 ‘청와대 2인자’
심수봉이 어두운 밤 삭막한 안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또래 뻘인 박근혜는 권력의 ‘단맛’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백발의 장차관들이 90도로 머리를 조아리고, 수많은 아첨꾼들이 그녀를 에워쌓았다. 큰 단체의 총재직도 맡았다. 아버지가 궁정동 안가에서 주색파티가 벌어질 때 딸은 최태민이라는 정체불명의 목사와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들었다.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는 이 ‘구국여성봉사단’이 10.26 총격사건의 발단이라고 주장했다. 김재규는 10.26사건의 정당성의 논거 중 하나로 ‘최태민 사건’을 거론했다. 비위사실과 여자와의 추문도 있는 최태민이라는 사이비 목사가 박근혜를 등에 업고 기업인들을 끌어들여 운영위원으로 위촉하면서수천만원의 찬조비를 뜯어내고 이권개입을 하는 등 물의를 빚고 있어 박정희에게 충언을 했지만 딸을 두둔할 뿐 끝내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됐던 '박근혜-최태민'. 김재규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박정희에게 보고하고 충언했으나 딸을 두둔하고 듣지 않아
결국 '10.26거사'를 결행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살해 현장의 여자에게 닥친 환란은 가혹했다. 심수봉의 증언이다. “그 사건(궁정동 총격 사건) 이후 정신병원에 감금당했다. 흰 가운 입은 남자들이 강제로 나를 끌고 가 수면제 같은 약물을 주사했다. 약이 얼마나 독한지 2주일만에 깨어나 화장실 거울을 보니 ‘이대로 있다간 큰일 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정동 그 여자’라는 ‘주홍글씨’
계엄사는 그녀에게 심령이 씌웠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감금돼 당했던 고통에 대해 그녀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을 연상하면 된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자신에게 그치지 않았다. “나를 만났다는 이유로 내가 아꼈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 심하게 고문을 당했다...어머니도 저로 인해 고초를 겪으셨다.”
‘10.26 그 자리의 여자’라는 ‘주홍글씨’는 그녀의 인생을 궁지로 몰아갔다.
어렵게 생활하며 취입한 음반이 박정희를 소재로 한 것이라는 소문에 시달려 수차례 방송금지를 당했다. 얼굴이 못생겨 병풍 뒤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모욕적인 소문부터 정신 이상이 됐다는 루머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어떤 이들은 10.26으로 음반을 팔아먹는다고 음해하기도 했다.
‘궁정동 여자’라는 낙인은 곳곳에서 장애로 작용했다. 그녀의 얘기다. “CF 섭외가 진행되다가 중단된 적이 있는데 우리 남편이 그러더군요. ‘10.26이 딱 가리고 있는데 얼마나 께름직하고 찜찜하겠어?’....사람들이 그걸(궁정동 가수였던 사실) 굉장히 안 좋게 생각하는 구나 알겠더군요.”
그녀는 10.26 궁정동 안가에 함께 있었던 또 다른 여자 신재순도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미스 신이 미국 LA에 살아요. (미국으로) 공연 갈 때마다 찾아오는데 늘 눈이 빨개져서 와요.”
잘못된 과거는 용서의 대상이지 단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쯤하자. 심수봉이 과거로부터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아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녀에게 고통을 안겨준 건 권력이었다. 발단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다. 박정희의 ‘궁정동 파티’로 인해 심수봉의 과거는 ‘주홍글씨’가 됐고 그녀에 대한 신뢰는 망가졌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이렇게 말한다.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성큼성큼 미래로 나가겠다.” 오만하기 그지없다. 잘못된 과거는 용서의 대상이지 단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 멋대로 잘못된 과거를 잘라낸단 말인가?
아버지 권력을 대물림 받은 박근혜가 권력에 의해 30년이나 고통을 당한 심수봉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심수봉의 ‘고통의 과거’는 ‘박정희의 과거’다. ‘박정희의 과거’는 단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박근혜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게 아직 수두룩하다.
출처;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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