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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묘비명(墓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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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변호사
박근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며칠 전 어느 학술대회에서 6.15선언과 10.4합의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건 보수와의 결별 선언이었다. 그동안 보수층에서 그녀의 좌경화를 의심하면서 6.15선언에 대한 지지입장을 철회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데 대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세종시로 수도를 분할하는 걸 주도했다. 그리고 4년 전의 ‘줄푸세’ 공약에서 벗어나 보편적 복지’에 대해 포퓰리즘적인 수용태도를 드러냈다. 이번에 6.15선언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 것은 자신의 본색에 대한 분명한 과시였다. 이로써 우리 정치판의 양당은 모두 좌익정당이 되었다.
1960년대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들은 국가부분을 확대하여 보편적 복지에 매달렸다. 명성에 목말랐던 ‘지식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복지를 외쳤고 평등과 평화를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허구가 밝혀졌다. 그들이 말한 평등은 하향평준화였으며, 평화는 폭력을 용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 전철을 반세기가 지나 우리가 밟으려 하고 있다. 정치판에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은 사라졌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창의성을 북돋우며 스스로 공동체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세력은 종적을 감췄다. 겉으로만 보수의 모자를 쓴 자들이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가진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그들은 뻔뻔스럽기 그지 없다. 선거에서 이기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박근혜는 보수이고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부득이하게 내놓은 전략을 이해하라고 속삭인다. 설사 박근혜가 보수가 아니래도 저쪽처럼 빨갱이는 아니지 않느냐고 되래 역정을 낸다.
누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도록 만들었나? 그건 바로 우리들이다. 보수정신이 무엇인지 아무런 이해가 없는 가짜들이 보수라고 행세하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간혹 진짜가 있어도 제 이름 날리기에 급급해서 후학들을 키우지 않고 청년층에게 보수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긴 세월을 자신의 영달에만 정신을 팔았지 아무도 헌신한다는 각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나라에 보수의 종언을 본다. 스산하다. 그 묘비명에 어울릴 말을 찾아 잠시 방황했다. 그리고 찾았다. ‘여기 한때 꿈꾸었던 우리들의 미래가 죽어 있다’
출처;전원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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