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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와 점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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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를 처음 안기부의 어느 건물에서 직접 만났을 때 저는 20대를 사는 묘령의 단아한 처녀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 저는 아들‧딸을 낳아서 키우는 한 남편의 아내요 두 아이의 엄마이었고, 40대를 사는 중년의 부인이 되어 있었으나 처녀시절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세월의 파도에 아무리 시달려도 변하지 않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권하에서 저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번 만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기회를 마련할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일전에 그의 인터뷰 기사가 어느 일간지에 실린 것을 계기로 백방 노력하여 드디어 우리 집에서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김현희 양과 그의 남편, 그리고 누구라면 다 알만한 저명인사 한분을 초대하여 넷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와 어디나 동행하는 경호팀은 여경 한 사람을 포함해 다섯이나 된다고 들었는데, 우리 집에 인접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내 사무실의 사무처장이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황장엽 선배를 모실 때에도 상황은 비슷하였습니다.
체제의 지령에 따라 KAL기를 폭파하고, 체포돼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끝나고 서울로 압송, 사형선고 그리고 감형‧석방, 그러나 하루도 편한 날 없이 살아온 ‘고난의 여왕’ 김현희! 무엇이라도 내게 있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행운의 황금열쇠’를 하나 주었습니다.
그 날, 붓글씨 쓰는 판대기에, “겨레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김현희 양을 위한 점심”이라고 내가 먼저 적었고, 홀로 초대받은 그 저명인사는 자기의 소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좋은 만남에 동석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녀의 아버님보다 두 살이나 나이가 많은 84세의 김 노인이 벅찬 가슴으로 저를 껴안고 황장엽 선생과 마지막 나눈 그 포옹을 하였을 때, 저와 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다운 것.”
출처;김동길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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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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