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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쓰는 이들… '온몸' 노동으로 위안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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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기자
입력 : 2013.08.12 03:01
['노동 세러피(therapy)' 열풍]
-'3D 노동'에 빠진 현대인
정신노동에 시달리는 현실 속 주말이면 텃밭으로, 목공실로… '땀 흘리는 보람'에 매료돼
-'더도 덜도 말고' 노력한 만큼…
결과물 보이지 않는 사무직보다 손으로 만든 '노동의 結實' 통해 삶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깨달아
 한 주말농장에서 온 가족이 텃밭을 가꾸고 있는 모습. 최근엔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퇴근하고 달려오는‘열혈 도시 농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김영근 기자 "낮에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못 견디게 내 '자식'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밤 11시쯤 야근을 마치고라도 달려가죠. 텃밭에서 흙을 밟고 서자마자 이렇게 중얼거리게 돼요. '얘들아, 보고 싶었어.'"
광고회사에 다니는 10년차 직장인 유서형(36)씨가 말하는 '자식'이란 다름 아닌 토마토와 당근, 오레가노다. 3년 전부터 서울 근교에 9.9㎡(3평)짜리 작은 텃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유씨는 "매일 의자에 앉아서만 일하고 걸핏하면 야근까지 하다 보니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한약도 먹고 병원도 가봤지만 그다지 낫질 않았다. 우연히 친구네 텃밭에서 일을 며칠 해보고 나서야 내 몸이 원하는 건 이런 진짜 노동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씨처럼 '정신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제대로 된 '온몸 노동'으로 달래려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근육을 움직이고 땀을 쏟으면서 마음의 갈증을 채우려는 움직임, 이른바 '노동 세러피(therapy)' 열풍이다.
◇화이트칼라, 3D 노동에 빠지다
서울시는 2000년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도심 텃밭 분양'을 시작했다. 수요가 폭발한 건 2011년부터다. 직장인들이 그룹을 짜서 텃밭 분양을 신청하고 함께 '공동체 농업'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송임봉 서울시 민생경제과 도시농업팀장은 "올해 텃밭 분양을 신청한 그룹 중 30%가 직장인 단체"라면서 "참여도가 가장 높은 그룹이기도 하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목공 작업실 '아임우드'엔 직장인 20여명이 매일같이 드나들며 소목(小木)을 배운다. 작게는 의자나 소반, 크게는 침대나 옷장까지 만든다. 직장인 이유정(34)씨도 틈만 나면 이곳에서 의자며 선반을 만드는 사람 중 하나다. 눈금 재고, 톱질하고, 나무 짜 맞추고, 사포로 문지르고…. 벌건 얼굴, 땀범벅인 이씨는 "이렇게 보람 있는 일도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뭐랄까, 의무감만 크고 실체는 없잖아요. 끊임없이 문서를 만들고, 조직에서 눈치를 봐야 하고. 하지만 목공은 시간 들인 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니 반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목공방에서 한 여성이 목공 기계를 만지며 재단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들은“땀 흘리며 목공 일을 배우다 보면 회사 생활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오히려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근원과 본질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 현상"이라고 했다. "도시 문명과 소비문화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허망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나 SNS가 발달할수록 정작 그 속에서 진짜 인간관계는 오히려 줄어드는 것처럼. 노동 세러피는 손을 쓰고, 흙을 밟고 함께 그렇게 얻은 결과물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되찾고 삶의 주인이 '나'임을 확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읽힌다."
◇정직한 '성취'의 매혹
디자이너·스타일리스트·포토그래퍼·가수 같은 직종 종사자들이 '노동 세러피' 열풍에 앞장선 것도 특징. 최근 가수 이효리는 한 방송에서 작곡가에게 돈 대신 자신이 옥상 텃밭에서 직접 키웠다는 채소를 선물하면서 "자선 콘서트에 쓸 곡을 좀 기부해달라"고 말했다.
유명 포토그래퍼 조남용씨는 촬영하고 남는 시간 틈틈이 목공 일을 배우다, 최근엔 아예 목공 아티스트로 겸업을 시작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편집숍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전략과 처세가 필요 없다' '더도 덜도 아닌 노력한 만큼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노동 세러피'의 매력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텃밭을 일구며 지낸 지 8년이라는 국무총리실 공보실 언론협력행정관 성수영씨는 "열흘 동안 해외 출장을 다녀오느라 텃밭을 돌보지 못했더니, 농작물이 전혀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더라. 다시 열흘 동안 매일같이 물·거름을 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쑥 자랐다. 정말이지 어떤 거짓도 포장도 통하지 않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제빵에 빠졌다는 방송 작가 이희윤(40)씨는 "예전엔 수입의 절반 이상을 화려한 옷이나 구두를 사고 달콤한 디저트를 사는 데 썼다. 제빵을 배우면서 밀가루 체 치고 반죽하고 발효하고 오븐에 굽는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작은 빵 하나도 완성되지 않음을 배웠다. 그 후론 화장품이나 옷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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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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