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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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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스토리 모두 너절하고 서울 거리는 식별조차 어려워… 홍보 효과는 어찌 산출했는지 두 시간 즐기겠다는 기대조차 접으면 큰 실망할 일 없으련만 이 납득 못 할 흥행 성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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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우 문화부 차장
hwhan@chosun.com
한국에 영화 기사를 다루는 매체가 180개나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벤져스'라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개봉 전 언론 시사회에 180개 매체에서 600명가량이 취재하러 왔다고 한다. 그것도 영화 홍보사들의 협회인 영화마케팅사협회가 사이비 기자와 자칭 파워블로거를 지난 2년간 줄이고 줄인 숫자다. 그 전에는 매체 수가 거의 300개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매체가 영화 '어벤져스'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포털 사이트에 '어벤져스'로 기사를 검색해보니 검색 한계인 4000건이 넘는다. 전체 기사는 아마 1만건을 넘을 것이다. 28일 현재 이 영화는 전국 1843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다. 전국 스크린 수가 2281개이니 한국 극장의 80%를 점령한 상태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는 모두 13편으로 그중 '어벤져스'는 6일간 5만5290번이나 상영됐다. 상영 횟수 2위 영화 '약장수'(3714회)보다 15배나 많다. '어벤져스' 관객은 400만명을 넘었다. 지난주부터 한국 대중문화에는 '어벤져스'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 영화를 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하고 주인공들이 몰려와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 달 전쯤 영화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관객 수를 나름대로 어림잡는데 '트랜스포머' 정도를 생각하고 700만~800만명을 말했다가 타박을 들었다. 당연히 1000만명을 넘길 것이며 '명량'의 1700만명 기록도 깰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아무도 '어벤져스'의 실체를 보지 못했지만 다들 확고한 두려움에 차 있었다. 마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인공들이 실체도 모르는 카이저 소제를 두려워했듯이.
'어벤져스'가 그렇게 대단한 영화인가? 1편 볼 때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만큼 푹 잤기 때문에 지난 월요일 극장을 찾았을 때는 커피를 마셔가며 졸지 않고 봤다. 놀라울 만큼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였다. 아이언맨 혼자 나오는 영화는 재미있었는데 '어벤져스'에 낀 아이언맨은 이상하리만큼 유치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영화의 상당량을 한국에서 찍은 것은 분명 눈요깃거리였다. 이를테면 '22가 5993' 번호판을 단 차가 전복된다든가 경기 의왕시 롯데마트 앞에서 추억의 대우차 레간자가 부서지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볼 때 한국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없다. 청담대교의 복잡한 진출입 램프는 서울 사람들이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한글 간판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건물들은 보기 힘들다. 할리우드가 원했던 것은 '도쿄나 홍콩이 아닌 아시아의 어떤 도시'였던 셈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어벤져스' 한국 촬영의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가 2조원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계산한 결과인지 궁금하다.
그나마 한강 세빛섬이 독특하게 생겨 세계 관객들의 흥미를 끌 것 같다. 예고편에도 공개된 이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주인공이 반포대교 남쪽 멀리서 지켜보는 모습이다. 현재 위치를 따져보면 팔래스호텔이나 국립중앙도서관 옥상에서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캡틴 아메리카가 서 있는 곳은 강 건너 동빙고동 구옥(舊屋) 동네쯤으로 보인다. 각각 다른 곳에서 촬영한 장면을 합성한 것이다. 이 영화는 서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도 않는 셈이다.
영화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문화부 기자의 의무감 같은 것 때문에 본 영화이긴 해도 '어벤져스'의 캐릭터나 스토리는 심하게 너절하다. 1970~80년대 식으로 말하면 태권브이와 마징가제트, 600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와 원더우먼이 총출동해서 나쁜 놈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1편 볼 때 그래서 졸았던 건데 이번엔 워낙 호들갑이 요란해서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했지만 역시나 1편과 대동소이했다.
이 영화는 사상 최고의 액션을 자찬(自讚)한다. 액션이 뛰어나다는 건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너무 위험해서 안 하는 걸 영화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액션은 로봇이나 외계 생명체 같은 가상의 캐릭터가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할 때 신기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어벤져스'는 못 하는 게 없는 캐릭터들끼리 밀고 당기다가 결국은 우리 편이 이기는, '그럴 줄 알았어'류의 영화다. 게다가 이 영화 캐릭터 중엔 신(神)도 있다. 무거운 망치를 못 든다는 이유로 인간을 비웃는 신이다. 수퍼맨들도 퍽퍽 쓰러지는 전쟁터에서 소총 들고 설치는 군인들 장면까지 보면 이 영화의 타깃 관객이 어디쯤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어떤 영화를 택하는 데는 단지 두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는 이유도 있다. '12세 관람가(可)'인 영화 등급을 '30세 이상 관람불가(不可)'로 바꿀 수 있다면 '어벤져스'도 그럴 것이다. 그 이상 기대하기 힘든 영화이고, 그래서 실망할 것도 없다. 다만 왜 이 정도 영화가 전국 극장의 80%를 차지한 채 한국 영화사의 흥행 기록을 죄다 깨 나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이것이 정말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인가, 아니면 한국 문화 자본의 수준인가.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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