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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협박에 "난 가진게 없으니 죽일 테면 죽여라"… 거리낌없던 無碍道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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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8.09.03 03:00
'불교평론' 무산스님 추모특집… 권영민·신달자 등 18人의 회고
1960년대 어느 날, 젊은 스님 둘이 경북 청도의 한 절에 묵었다. 하필 그날 밤 강도가 들었다. 칼을 들이대고 "가진 것 다 내놓으라" 협박했다. 혼비백산한 한 스님이 걸망을 열어 보이며 다 가져가라 했다. 그러나 다른 스님은 "난 가진 게 없으니 죽일 테면 죽여라" 배짱을 부렸다. 강도는 어이가 없어 눈만 부라리고 나갔다. 배짱부린 스님은 지난 5월 입적한 무산(霧山) 스님, 이 목격담을 전한 이는 조계종 전계대화상인 BTN불교TV 회장 성우 스님이다.
계간 '불교평론' 가을호는 무산 스님을 가까이서 겪은 18인의 회고를 모아 추모 특집을 마련했다. 만해대상과 축전을 통해 한용운을 이 시대로 불러낸 주역이자 시조시인이며, 걸리는 곳 없는 무애도인(無碍道人)으로 불린 스님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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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입적한 무산(霧山) 스님의 사진을 들고 백담사 인근 용대리 주민이 스님을 회상하는 모습. /남강호 기자
평생의 도반(道伴) 정휴 스님은 경남 삼랑진 약사암 풍경을 잊지 못한다. 법당이 곧 침실인 작은 암자였는데 불상(佛像)이 좀 달랐다. 무산 스님이 직접 만든 불상이었다. 구석엔 '현대문학' 잡지가 50권쯤 쌓여 있고 천장엔 고무줄 한 가닥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고무줄 끝엔 담배 한 갑이 매달려 있었다. 누워 책 읽다가 당겨서 담배 피우려 고안한 장치였다.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는 백담사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휴지조각을 줍는 어떤 노스님을 만났다. '문학평론가'라고 하자 그 스님은 다짜고짜 "허망한 일"이라 했다. "글이란 자기 혼이 담겨야 제 글이지요. 그런데 요즘 평론이라는 것은 남이 만들어놓은 방법론으로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을 왈가왈부 시시비비만 하지요. 허망할 수밖에요." 당혹해하는 권 교수에게 스님은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라며 손을 잡았다. 무산이었다.
신달자 시인은 '저 거리의 암자'란 시(詩)로 인연을 맺었다. 남편 잃은 시름을 퇴근길 포장마차 풍경에 투영한 작품. 발표 후 스님으로부터 방문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천주교 신자인 데다 모르는 사이라 사양했더니 몇 달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백담사 동안거 끝나는 날이었다. 참선수행한 스님들 앞에서 무산은 "여러분이 3개월 수행한 것보다 이 시 한 편이 더 불경(佛經)에 가깝다"고 했다. 시인은 다시 시를 쓸 힘을 얻었다.
이홍섭 시인은 스님 어머니의 장례 얘기를 적었다. 어느 날 스님이 먼 길을 동행하자 했다. 당도한 곳은 스님의 고향 변두리 여관. 출가 후로는 절에 찾아와도 만나지 않던 모친의 발인 전날이었다. 스님은 장조카에게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꽃으로 덮어달라" 부탁했다. 친분 있는 인사들 명의로 조화를 잔뜩 보냈으나 정작 스님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이틀간 곡기를 끊은 채 여관방에 앉아 모친을 보낸 뒤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출처;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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