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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천덕꾸러기가 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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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안석배 논설위원
입력 2018.08.21 03:15
노무현 정부는 '내신 30%'… 문재인 정부는 '정시 30%'
뿌리 같은 정부서 반대 정책… 대학엔 "예산 안 준다" 협박
안석배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여름 교육부와 대학들 사이엔 전운(戰雲)이 돌았다. 7월 초 교육부총리가 발표한 입시제도 때문이었다. 당장 그해 입시부터 모든 대학 입시에서 내신을 30% 이상 반영하라는 지침이었다. 자사고·특목고를 싫어했던 당시 정부가 이 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한 입시안을 만들어 발표한 것이다.
대학들은 반발했다. 이럴 때 교육부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내 드는 게 있다. 행정·재정적 제재다. 며칠 뒤 교육부는 "지침대로 하지 않는 대학에는 예산 지원을 끊겠다"고 했다. 로스쿨 인가(認可)를 내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전방위 압박으로 200개가 넘는 대학은 하나하나 제압당했다.
지난주 교육부가 발표한 2022학년도 입시안에도 '30% 룰'이 있다. 위원회에 이리저리 떠넘기다가 교육부가 최종적으로 만든 정책의 골자는 수능으로 뽑는 정시 비율을 30% 이상 늘리라는 거다. 이번에도 정부는 지침을 따르지 않는 대학에 예산을 줄이겠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교육부 보도자료는 문구(文句)조차 안 바뀐다. 전전(前前)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 포스텍 총장이 "교육부 지침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김 총장도 현장에 내려와 보니 교육부의 '갑질'이 제대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수십조원 예산으로 규제하고 간섭하면 교육부 말을 거스를 대학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건 왜 10년 전엔 '내신 30% 이상'이고 이번엔 '수능 30% 이상'이냐는 것이다. 사실 내신과 수능은 입시에서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 한쪽을 강조하면 다른 쪽 영향력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뿌리가 같은 정부인데 교육 현장에 정반대 주문을 하고 있다. 노무현·문재인 두 정권을 관통하는 교육 철학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그때그때 정치 논리로 결정해서 그런 것인가.
전국에는 1만1000여개 학교가 있고, 그곳에서 700여만명의 학생이 공부한다. 교육정책 중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게 수치를 던져주고 "따르라"고 지시하는 거다. 교육정책, 입시정책이 군사작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수능전형을 늘려야 할 이유가 있더라도 학교별 사정은 다 다르다. 수능으로만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도 있고, 학생부로만 뽑는 대학도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 자율성조차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그런 토양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 모른다. 5년 임기 정부가 정권 잡을 때마다 다 바꿀 것처럼 교육 생태계를 흔들고 뒤엎어 놓으니 과거의 정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공교육 살리라"고 교육 예산을 늘려놨더니 규제만 늘었다. 올해 교육예산(68조원)도 그렇게 쓰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다. 해방 당시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인구가 78%였고 초등교육을 받은 인구는 22%에 불과했다. 10년 후인 1955년 인구 90% 이상이 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뿐 아니라 마을마다 한글강습소 만들어 글을 깨우쳤고, 전쟁 때 끼니는 걸러도 천막교실에서 공부했다. 우리처럼 교육에 집착이 강한 나라는 드물다. 그 열정이 오늘을 일궜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이 우리 앞길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다. 시대를 대비하는 정책과 담론은 사라졌고, 구시대적 규제가 학교와 학생들을 겨눈다. 다른 선진국 지도자들이 '교육개혁'으로 머리를 맞댈 때, 우리 교육 당국은 1년 이상 끈 교육 이슈의 결론이 '수능전형 30% 이상'이라고 발표한다. 부끄럽다. 이런 생태계에서 어떻게 미래를 키울 수 있을까.
출처;조선닷컴 태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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