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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부드럽고 정교하게… 140년 볼쇼이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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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6.01 03:00
백조의 호수
'발레'라고 하면 자연스레 '백조의 호수'가 따라온다.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순백 발레리나들의 군무로
기억되는 클래식 발레의 대표작이다. 볼쇼이 발레단은 1877년 2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처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원조'다. 볼쇼이 발레단이 지난 27~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
연했다. 나폴리 장인이 만든 원조 나폴리 피자나 에든버러 셰프의 스코틀랜드 앵거스 스테이크를 맛본
듯, 오페라극장 2000석을 3회 공연 모두 매진시킨 관객들은 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2막 지그프리트 왕자와 흑조 오딜의 파드되(2인무).
2막 지그프리트 왕자와 흑조 오딜의 파드되(2인무). 흑조 오딜은 백조 오데트를 꼭 닮은 외모와 화려한
춤으로 왕자를 유혹한다. /볼쇼이발레단
볼쇼이가 왜 볼쇼이인지 보여준 무대였다. 지그프리트 왕자 성년식 연회장의 파드트루아(3인무)에서,
연노랑 튀튀를 입은 두 여자 무용수의 춤은 솜털 보송보송한 병아리 날개처럼 가볍고, 녹아내리는 바닐
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웠다. 24명 발레리나가 선보이는 백조들의 군무는 기하학적 정교함의 정수.
토슈즈가 무대 두드리는 소리가 백조의 퍼덕임처럼 들리기 시작하고, 무용수들이 날갯짓하듯 긴 팔을
둥글게 앞으로 뻗으면 그 가느다랗고 하얀 팔들 아래 깃털이 돋아나는 듯한 환각에 빠진다. 2막 무도회
의 흑조(黑鳥) 오딜은 전막의 백조 오데트와 대비돼 더욱 검고 우아한 광기를 뿜어낸다. 지그프리트와
오딜의 흑조 파드되(2인무)에 이어 오딜이 연속 32회전 푸에테(한쪽 발끝을 축으로 다른 쪽 다리를 흔
들며 하는 회전)를 시작하면 칠흑 같은 튀튀 위에 반짝이는 보석들이 은가루처럼 흩날리며 객석까지 유
혹의 주문을 뿌리는 듯하다.
볼쇼이는 2013년 떠들썩했던 예술감독 황산 테러 사건과 이어진 내부 갈등으로 허덕였다. 2016년 부임
한 마하르 바지예프 예술감독은 볼쇼이 특유의 순혈주의 전통을 깨고, 자신이 거쳐온 상트페테르부르
크의 마린스키와 밀라노의 라 스칼라 등에서 외부 무용수를 적극 영입했다. 이를테면 수입한 벽돌로 오
래된 집을 새로 짓는 전략인 셈. 특히 29일 공연은 혼종 수혈로 더 강하게 진화하는 볼쇼이의 현재를 보
여준 무대였다. 마린스키 출신 솔리스트 알료나 코발료바가 오데트/오딜을, 라 스칼라 출신 발레리노
자코포 티시가 지그프리트를 맡아 볼쇼이의 기존 수석 무용수들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뿜어냈다. 정옥
희 무용평론가는 "볼쇼이는 자신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마린스키의 정제된 테크닉과 만나 일으킬 핵융
합에 미래를 걸고 있다"고 했다. 242년 전 창립된 발레단이 141년 전 창조된 발레 작품으로 2018년 한
국 관객들에게 보여준 것은, 자신들의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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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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