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타임즈
> 뉴스 > 경제
|
|
|
<서평>1%만이 부자인 경제의 끝은 자유낙하?|
|
로버트 라이시, "경제위기의 진짜 원인은 소득 불균형"
|
최용일, solbeeya@todayfocus.kr
등록일: 2011-02-14 오전 9:37:03
최근 나온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로버트 라이시 지음/안진환·박슬라 옮김, 김영사, 240쪽)가 주목을 끌고 있다. 2010년 UC버클리 교수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에 의해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After Shock'로 금융위기의 후폭풍과 그 해법을 찾고 있다.
2007년 세계금융위기 후폭풍으로 2008~2009년 동안 이어진 불황기 동안 미국에서는 900만개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해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회복을 했지만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100만개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1997년 IMF의 상흔이 지나간 지 고작 10년 남짓 밖에 안 된 2007년에 또 다시 그리고 더 크고 강하게 세계를 충격 속에 몰아넣어버린 세계금융위기는 1929년 세계대공황에 버금가는 대사건이었다. 세계대공황으로부터 100년도 채 안 된, 약 80년 만에 일어난 세기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2007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왜 일어났는가? 어떤 사람은 미국인들이 빚잔치를 벌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준 은행을 비난하는가 하면 은행을 감독하지 못한 당국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금융위기조사위원회는 금리를 낮춰 '부동산 거품'을 만든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공범'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보니 정작 위기가 왜 짧게는 10년 만에, 길어도 100년이 못 돼 반복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은 다르다. 그는 1929년 세계대공황과 2007년 세계금융위기의 공통적인 원인을 제시하여 흥미를 끌고 있다. 그가 주장한 바를 요약해보면 상위 1%에만 富가 집중됐던 1928년·2007년에 경제위기가 터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격차 줄이고 중산층을 살려야 '대번영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2007년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 1928년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간 저자는 미국 역사에서 소득 상위 1%가 전체 부의 23% 이상을 차지했던 해는 딱 두 번이었음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한 번은 1928년이었고 다른 한 번은 2007년이었으며, 두 번 다 이듬해 경제위기가 터졌다. 두 번 모두 부가 소수에 집중되고, 소외된 중산층은 구매력이 떨어졌다.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 정부는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꿨다. 정부는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확대해 무너진 중산층을 키웠다. 소득이 늘어난 중산층이 물건을 사들이자 미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대번영의 시대'가 이어진다.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한 가족이 차를 두 대 사면 할인해 준다는 내용의 TV 광고 '포드 두 대의 자유'를 시작한 것은 1950년대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 가족이 차 두 대를 살 여력을 갖게 됐음을 뜻한다. 상위 1%가 차지하는 부는 전체의 8%까지 떨어질 정도로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
그러나 이런 대번영의 시대는 레이건 시대부터 변질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작은 정부, 시장 자율, 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를 축으로 하는 레이건의 경제정책,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미국 경제는 어느 정도 활성화됐다고는 하지만(저자는 이마저도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함) 소득격차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생산성은 올랐지만 중산층 노동자들의 임금은 게걸음을 걸었기 때문에 중산층이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집에 있던 여성들이 일터에 나가고, 더 오랜 시간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대출받는 것 등 세 가지 고육지책 밖에 없었다. 오르는 집값이 중산층 가계의 현금인출기였지만 그마저도 2008년 집값이 폭락하면서 작동을 멈췄다. 결국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급감했고 경제가 추락했다는 게 저자가 말하는 이번 불황의 연대기다.
저자는 "미국인들이 과도하게 돈을 빌린 것도 맞지만 많은 빚은 위기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미국의 부(富)가 상위 1~2%에 집중된 반면 중산층의 소득이 정체된 데 있다"고 말한다. 원인이 다르다면 대책도 달라야 한다.
저자는 가계와 정부가 빚을 줄이고, 은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대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가 내놓는 해법은 과감한 중산층 살리기다. '대번영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이 돈으로 중산층에는 소득을 보조해 주자는 주장이다. 중산층이 학자금 대출에 억눌리지 않도록 학자금 쿠폰을 지급하고 비싼 민영(民營) 의료보험을 대신한 전국 단위의 국가의료보험을 도입하라는 주장도 한다.
그는 이런 주장이 '부자 때리기'가 아니며 부자들의 정치적·경제적 이해와도 부합한다고 강조한다. 중산층 없이는 경제의 파이를 키울 수 없고, 지금과 같은 큰 소득 격차는 부자들이 우려하는 과격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치를 낳기 때문이다.
저자의 대책이 현실적인지, 실현 가능한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떤 데쟈뷰 같은 섬뜩함을 느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이전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좌파정책을 공격하면서 내세운 경제정책, 이른바 'MB노믹스' 역시 레이거노믹스와 유사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친기업주의를 내세워 감세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시작되었으며 노동정책 역시 전임자급여지급금지와 복수노조라는 반노조적 기조를 띠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과 딱 들어맞았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나라 중 하나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이 이상 과다해지는가 싶더니 역사상 어떤 노동경제학자나 노사관계전문가도 꿈꿔보지 못한 이상한 노사관계가 전개되었다.
자본가(사용자)가 대기업 정규직의 귀족노조 뒤에 숨어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이제이식으로 다스리는 웃지 못 할 상황, 마르크스도 예상치 못했음직한 노자가 대립하고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자를 억압하는 노노간 계급내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세는 청년실업을 통해 그들의 유효수요 창출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정규직의 임금상승 동력까지 함께 끌어내리는 것은 물론 정규직의 조기퇴직과 맞물려 중고령실업을 통해 전체 사회의 유효수요 창출력을 얼어붙게 만드는 사례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부동산버블을 잡는가 싶더니 집값 하락세에 따라 전세금을 운용하는데 따른 실익을 잃어버린 중산층이 상대적 약자인 서민층을 상대로 전세금 인상이나 월세전환 압박을 가했다. 중산층이 부동산 버블로, 그리고 저금리수준으로 상실당한 기회수익을 보상받기 위해 시중 금리수준을 상회하는 7% 수준의 월세수입을 추구해가는 이러한 전월세제도 변화는 몰락해가는 중산층의 '한강에서 눈 흘기기'의 결과였으며 중산층 이하 유효수요 창출력이 최저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여기에 더해 롯데마트, GS마트, 이마트 등 대형 마켓이 재래시장 및 동네상권을 부도덕하고 무개념적으로 침투해가면서 직장에서 밀려나 자영업자로 돌아선 많은 소상인들을 또 다시 좌절하게 만들었다. 이 또한 사회전체의 유효수요 창출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아니 땅속에 처박아 버리는 행태였다.
이런 작금의 대한민국 사정을 보더라도 저자가 이번 위기의 원인을 단지 '금융의 실패'에서 찾는 게 아니라 정부·시장·노동이라는 큰 그림에서 꿰뚫어보려는 시각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설득력을 요구하고 있다.
최용일의 전체기사보기
< 저작권자 © Today Focu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출처 투데이포커스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