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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언론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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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 | junwt5051@hanmail.net
4월 16일 수요일. 이날은 내가 진행하는 아침 방송이 여덟번 남은 날이었다. 나는 4월 25일 하차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강의 방송 계획을 세워놓았다.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중심으로 마지막 인터뷰를 준비했다.
9시 방송을 마치고 회의 뒤 방송국을 나오는데 속보가 떴다. ‘인천 발 제주행 여객선이 침몰했다. 다행히 수학여행 학생들은 전원 구명조끼를 입은 채 구출되었다.’ 전원 구출이니 이튿날 방송에 아이템으로 잡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12시쯤 속보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백여 명이 아직 배에 남아있다는 내용. 오후 세시가 넘어갈 때 실종자는 283명으로 불어났다. 그날 예정된 채널A ‘쾌도난마’에 내가 나갈 무렵엔 모든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이 긴급편성으로 바뀌었다. 언론사 속보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내 남은 방송도 모두 세월호 사건으로 메꿔졌다.
처음부터 사고는 한눈에 인재로 보였다. 우선, 첫날이 가기 전에 세월호에 도대체 몇 명이 탔는지, 몇 톤의 화물이 실렸는지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컨트롤 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해경에게 모든 걸 미뤘다. 사령탑인 안행부 장관조차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다.
해경은 더 깜깜했다. 정부부처마다 대책본부만 경쟁적으로 만들어져 벌써 열개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사고원인은 고사하고 탑승인원조차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배를 감독하는 기관은 아무 곳도 없었고 이 배의 항행을 관제하는 곳도 없었다. 나는 쾌도난마에서 인재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선장이 먼저 탈출한 정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이내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사고는 안전불감증에 빠진 선박회사와 도덕불감증에 빠진 관료사회의 유착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사고의 피해를 키운 건 선장과 일등항해사 기관장 등 배를 책임지고 탑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질 승무원들이었다. 선장은 선박직 승무원들과 함께 있다가 속옷 차림으로 제일 먼저 탈출했다. 맹골수도라는 위험한 뱃길을 안개시정거리 2해리를 헤치고 가는 책임은 경력 4개월 되는 어린 여자 3등항해사에게 맡겨져 있었다. 그 3등항해사는 수갑을 찬 채 기자들 앞에서 짐승울음같은 소리를 질렀다. 처음 구조에 나선 해경도 문제가 많았다. 그들은 유리창 아래서 구출을 호소하는 어린 학생들을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해경이 도착한 뒤 배가 침몰할 때까지 50분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자.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데스크라면 취재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겠는가? 사고원인을 분석하고 피해가 확대된 이유를 찾는 것은 기본이다. 선장과 승무원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취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언론이 첫 번째 관심은 생존자 구출이어야 했다. 아직도 배 속에는 290명이 넘는 승객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채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학생이었다. 그런데 언론은 정도를 버렸다. 그때부터 우리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황색언론 그대로였다.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몰려든 수많은 기자들은 이미 야수로 돌변해 있었다. 그들은 살아나온 학생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친구가 죽은 걸 아느냐고 태연히 물었다. 세월호와 함께 한국 언론이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한 지상파 TV는 유가족들이 받을 보험금 내역을 도표를 그려 상세히 보도했다. 같은 시간 CNN은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의 생존시간을 설명했다. 섭씨 10도에서 15도 정도의 수온에는 1시간에서 다섯 시간, 4도에서 10도에는 1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가 생존시간이라고 했다. 그때 우리 방송은 에어포켓이 있으면 최대 72시간을 버틸 수 있다는 출처불명의 ‘골든타임’을 긴급속보로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어느 방송도 저체온증으로 인해 세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 위로 나온 선미가 승객이 있을 수 없는 탱크 부분인 것을 아무도 지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매일 잠수부 500여명이 투입된다는 ‘헛소리’는 조금도 검증하지 않은 채 보도했다. 심지어 어느 방송은 침몰한 배를 소재로 한 ‘타이타닉’ ‘포세이돈’ 같은 영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오보의 백미는 가짜 잠수부 홍모씨의 인터뷰였다.
이 언론의 가벼움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속보경쟁이니 양해해 줄 것인가. 그러나 이런 보도는 구조작업을 혼란에 빠뜨리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찢어진 가슴에 소금을 문지르는 짓밖에 되지 않는다. 이 참을 수 없는 언론의 가벼움이라니!
출처; 대한변협신문 [쓴소리 바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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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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