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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김근태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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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 박정희가 아닌 법치와 개방이 이루어 민주주의, 민주세력이 아닌 경제발전과 중산충이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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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newstalk@newstalk.kr
십 년 전쯤 고 김근태에게 말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랬다.
"우리가 독재와 싸울 때 가장 목놓아 외쳤던 단어가 자유다. 이 말은 박정희나 전두환은 싫으니까 다른 사람이 대신 나와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개인이 자의적으로 통치하지 말고, 법에 의한 지배 그러니까 다수가 합의한 법에 의해서 통치를 해달라는 소리였다. 그래야만 개인들의 자유가 보장되고 법 앞에서의 평등을 보장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실체가 뭔가? 민주화 세력이 정권 잡는다고 민주화된 게 아니다.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법 앞에서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화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당신들은 정권을 잡고 나서부터 자유란 말을 기피하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은 무조건 악이고 민주화 세력은 무조건 선인 것처럼 또 하나의 획일화된 이념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당신들도 똑같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억압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정책만 해도 그렇다. 똑같이 국민들을 통제하면서 박정희가 했던 건 독재고 당신들이 하는 건 민주적인 것처럼 말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법치와 개인의 자유를 원한다.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서 박정희가 하면 독재고 김근태 당신이 하면 민주라는 식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민주화 시대는 지났다. 사회주의를 동경하던 시대도 끝났다. 민주화 세력이 먼저 변해야 한다. 과거는 잊고, 이제부터는 법치국가 열린사회를 지향해서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하고 경제도 개방개혁을 통해서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김근태는 역시 큰 사람이었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듣기 싫은 얘길 끝까지 들으면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고 애썼다. 겸손했고 진지했다.
세월이 지나서 김근태는 열린당 의장이 됐다. 노무현 정권말기로 열린당이 망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김근태가 열린당 정책을 바꿔주길 기대했고 그는 처음엔 내 기대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 의장이 되자마자 전경련을 찾아가서 자신은 이념이 아닌 실용을 중시한다면서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몇 달을 못 갔다. 여기저기서 김근태가 변절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금세 꼬리를 내리고 예전의 민주투사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무렵 나는 김근태 주변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근태는 다음 선거에서도 떨어질 것이다."
내 말대로 됐다. 김근태는 총선에서 일생일대 치욕을 맛봐야 했다.
나는 나 나름대로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의 고뇌를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젊을 때 자유와 민주를 외치면서 독재에 항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지향한 사회가 대체로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였다는 점이다. 보통은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 공산혁명을 모델로 삼았고,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쿠바, 리비아 심지어는 북한을 동경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렀다. 그들이 독재라고 비난했던 한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반대로 사회주의권 경제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80년대 중반이 되면 이런 사실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을 감았다. 일부러 외면했다. 그러다 한국은 87년을 기점으로 민주화 단계로 접어들었고 반대로 공산권은 89년 소련을 비롯해 대부분이 망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개방개혁으로 전환한 중국만이 예외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다. 북한은 경제파탄에 세습독재로 가까스로 연명했다.
사실상 한국의 민주화 세력 대부분은 민주화된 이후의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젊음을 바쳐 항거한 독재체제 하에서 어떻게 눈부신 경제기적이 일어날수 있으며, 자신들이 동경해마지 않던 사회주의권 경제가 왜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져내긴 건지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 아니 이해할 능력은 있어도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피했다. 그걸 알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젊은 시절이 초라해지고 또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을 속이는 길을 택했다. "독재시절은 악, 민주화 세력만이 선"이라는 도그마를 만들어서 자신들도 무조건 믿고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숭배하도록 조작하고 강요하는 길을 택했다. 그 길만이 자신들이 누리는 현실 정치권력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니까 말이다.
김근태는 내가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겸손하고 진지하고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시 그도 죽을 때까지 민주화 세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너무나 힘들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자애심, 좌우대결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가족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살아온 주변사람들...이런 것들이 끝까지 인간 김근태를 과거 민주화 세력의 틀 속에 가둬놓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이룬 게 아니다. 법치와 개방체제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세력이 이룬 게 아니다. 경제발전과 중산층이 민주화를 이뤘다.
인간의 삶은 뭔가를 이루고 남겼을 때가 아니라 나름대로 정직하고 치열하게 살았을 때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김근태는 한 시대를 아름답게 살다가 갔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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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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