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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강화’로 정치위기 극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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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칼럼] 죽도 밥도 안 될 위험 수반한 MB행보
취임 불과 1년 3개월 만에 제2의 정치위기를 맞은 이명박(MB) 대통령은 국면타개책으로 ‘중도강화론’을 내걸고 시장골목을 찾아 나섰다. MB가 작년의 촛불사태에 이어 이번에는 노무현 추모역풍을 맞아 인기가 떨어져 한나라당 혁신파로부터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개편 등 대대적 인사쇄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라는 압력을 받자 이를 거부하는 대신 국정스타일의 일대변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MB가 이렇게 나온 배경은 그가 가난한 국민들을 외면하고 돈 있는 사람 편에 서서 국정을 운영한다는 인상과 이로 인해 그에 대해 ‘극우파’라는 비난까지 쏟아진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 격의 정치상황
보수든 진보든 가릴 것 없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불경기에 시달리는 영세상인들을 찾아 격려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기가 좋은 그림이다. MB는 진작 그랬어야 할 일이었다. MB는 후보시절에는 스스로를 달동네 출신이라고 부르면서 가난한 국민들 편에 서는 행보를 하더니 작년 초 정권인수위 때와 ‘강부자내각’ 시비가 일어난 각료인선 때부터 부자 편에 선 것 같은 좋지 않는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이번 노무현 역풍도 따지고 보면, 주로 공영방송이 연일 보도와 특집방송을 통해 노무현이 가난한 국민 편에 선 통치자였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불어넣어줌으로써 그 반대편에 선 듯한 MB가 정치적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는 마치 죽은 공명(孔明)이 산 중달(仲達)을 이긴 격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MB가 이런 행보를 하면서 '중도강화론'을 내세우고 자신은 원래 보수가 아닌 듯한 제스처를 쓰는 데 있다. 이로 인해 그를 지지하던 보수층이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민주당 등 야당으로 부터는 그가 정치적 쇼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MB를 계속 독재자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지난 6월 25일에는 “(MB가) 보수에서 중도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민심이 심상치 않아 궁여지책으로 그런 것”이라고 그를 몰아붙였다.
하기야 ‘제3의 길’ 노선을 걸은 DJ는 지난 1995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의 좌경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중도보수’를 자처하다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로 부터 ‘위장보수’라는 세찬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런 DJ가 MB에 대해 자기가 당한 것과 비슷한 비난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나 얼핏 보면 MB가 당시의 DJ 처지가 된 듯 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MB의 중도강화론에 대해 자유선진당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민주당에서는 “한가하게 이미지 개선 사업을 할 때인가”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으니 말이다.
우파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중도강화론
그럼 MB는 보수가 아니고 중도인가. 중도라면 그 중도란 어떤 뜻인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국가 정체성 등 대한민국의 중심적 가치를 지키면서 중도층을 포용하는 한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서민을 배려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MB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자 중도강화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청와대 박형준 홍보기획관은 “중도강화론은 원칙은 우파지만 정책은 유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에 의하면 MB의 중도강화론은 과거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균형예산과 탈규제 등 공화당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른바 '삼각화'(Triangulation) 전략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 MB 보좌진의 해명이 옳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중도강화론이라는 용어를 썼는지 일반국민들은 얼른 납득이 안간다. 현대는 이른바 ‘수렴(Convergence)의 시대’여서 보수파가 진보파의 정책을 취하고, 진보파가 보수파의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아닌가. 정책의 삼각화이든 수렴이든 어떤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할 필요는 있다. "나는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다. 자칫 MB가 애매모호한 자세를 반복하다가는 그의 이념적 정체성에 의문이 생겨, 그를 예측불가능한 지도자로 낙인을 찍으려는 세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하긴 MB의 고충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진보-좌파진영에서야 원래부터 MB를 반대해 왔으니 그에게 탐탁할 수가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친북세력은 그를 당장 주저앉히려고 기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MB의 대북정책에 불만을 품고 배후에서 그의 퇴진 운동을 지령하고 부채질 하는 북측의 공작도 무시하지 못할 단계이다. 친북파 아닌 진보-좌파세력은 당장의 MB의 퇴진은 원치 않겠지만 그를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아 무력화시켜 이른바 MB악법을 저지하고 소수당의 불리한점을 극복해 계속 지지기반을 확장함으로써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으려는 전략이다.
진보-좌파진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재작년 대선 때 그를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중간 부동층이 이탈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 징조는 이미 지난번 재보궐선거 때 한나라당의 완패로 드러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현상은 MB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보수진영의 동요이다. 한나라당 내의 친박계열의 불만과 이반현상은 오래된 일이지만, 작년 촛불사태 때부터 원외의 광범한 보수층이 느끼는 실망감과 환멸은 이제 분노로 변하고 있다. MB를 밀어주었던 보수계 지도자들과 보수적인 일반국민들은 MB의 우유부단한 정치지도력에 허탈한 나머지 그를 대통령에 잘못 뽑았다고 후회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보수지지층의 이반 막아야
한 가지 예을 들면, 중도실용주의를 내세운 MB가 자신은 보수가 아닌 듯 발언하고 최근에는 소설가 황석영 씨를 해외출장에 수행시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처신을 하자 보수진영은 MB의 이념성향에 의문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씨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MB는 본래 중도인데 극우보수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MB가 현재의 정치적 위기정국을 전환하지 못한다면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는 필연적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렇게 되면 곧 MB는 급속도로 지도력과 권위를 잃고 레임덕 현상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MB는 첫 번째 정치위기였던 작년 촛불사태 때는 미국과의 쇠고기추가협상으로 사태를 극복했다. 즉 쇠고기 추가협상을 선선히 받아들이고 흔쾌하게 양보를 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그를 도왔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 역풍에서 비롯된 제2의 정치위기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 외부의 원군이 없다. 오로지 MB의 정치적 지도력과 결단에만 달린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MB는 한나라당 쇄신파의원들이 요구하는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쇄신 대신 중도강화라는 정치 스타일의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중도강화론이 정치적 결단 부족 안되어야
문제는 MB의 행보에 어느 정도 지속성과 일관성이 있을 것이냐이다. 그 동안 MB와 그 참모들의 정치적 예견능력과 센스가 부족해서 수뢰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한 노무현이 영웅처럼 되고 MB는 반대로 그 정치적 역풍을 만난 것은 MB 정부의 아마추어 정치의 극치였다. 노무현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하는 야당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해서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검찰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정치적 무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만약 MB가 이번 중도강화 행보로써 노무현과 비슷한 이미지를 얻으려 한다면 그 성공가능성은 크지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은 중도강화를 한답시고 대중영합적인 정책으로 흘러 국정개혁을 제대고 못하는 사태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중도강화 행보는 죽도 밥도 안될 우려가 있다. 예컨대 6월 국회가 민주당의 반대로 끝내 열리지 못하거나 간신히 열리더라도 여야가 합의한 개혁입법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의 무능에 보수층의 실망은 극에 달할 것이다.
국회운영이 시국전반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은 우선 전력을 다해 국회운영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한나라당을 압도적 다수당으로 만든 총선결과는 무의미하다. 170여석의 거대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소수당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아무 일도 제대로 못하고 공룡이 퇴화하듯 끝내 무력화되고 말 것인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새 원내지도부를 주시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이런 한나라당의 무능이 이른바 중도강화론과 맞물려 MB정부의 정체성을 잃는 일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http://newsandpeople.com
ㅁ 뉴스앤피플 편집고문
출처 인사이더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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