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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나를 밟고 지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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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법률 투쟁 강하게… 그러나 品位·限界 지켜야한국 보수 정당 용광로에 몸 던져새로 태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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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논설고문
입력 : 2017.01.06 23:03
강천석 논설고문
한국 보수(保守)는 패배를 각오해야 한다. 비관론과 패배주의에 떠밀려서 하는 말이 아니다. 미국 대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예측에서 과거의 신통력(神通力)이 무너진 여론조사 동향을 과신(過信)해서도 아니다. 보수 세력 내부의 흐름이 정치 원리와 선거 법칙에 역행(逆行)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대로 가면' 이 나라 보수 세력에 승리도, 희망도 없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의 핵심은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이 위반 행위가 대통령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될 만큼 중대한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헌재 법정은 사실과 법리(法理)로 재판관을 납득시키는 자리다. 그러나 대통령 수족(手足) 비서관들은 비겁한 방법으로 헌재 출석 요구를 빠져나갔다. '떳떳하게 법정에 나가 정직하게 진술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만 있었더라면 100% 출석했을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제1 책무(責務)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고 수호하는 일이다. 법과 질서는 자유와 책임과 더불어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다.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와 보수의 가치를 외면했다. 보수가 낯을 붉힐 수밖에 없다.
대통령 대리인들의 변론 내용과 변론 방식은 70년대 유신(維新) 헌법 철폐 운동을 벌이던 민주화 인사나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법정 진술과 재판 전술의 판박이였다. 그들은 당시 헌법과 법률을 악법(惡法)으로 규정하고 사법부 독립성을 불신(不信)했기에 법정을 정치 투쟁의 무대로 삼았다. 법정 진술로 무죄(無罪)판결을 받아내기보다 자신들의 법정 진술과 태도가 법정 밖에서 지지 세력을 규합(糾合)하는 불씨가 되기를 바랐다. 대통령이 그때 그들과 같은 태도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대해서는 안된다. 대통령 대리인들이 헌재 법정을 '군중 재판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의 법정'에 빗대 말한 것은 중대한 탈선(脫線)이다. 이럴수록 보수의 언덕은 산사태 만난 듯 허물어진다.
대통령은 탄핵 심판에서 자신의 죄(罪) 없음을 다툴 권리가 있다. 엄밀한 사실 입증(立證)과 치밀한 법 논리를 동원해 충분히 싸워야 한다. 법 테두리 안에서의 당당한 자기 변론은 그 자체로 이 나라가 헌법과 법률이 살아 숨 쉬는 나라라는 증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투쟁에는 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있다. 헌법과 법률 또 그것이 정한 절차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경멸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출석해야 할 자리에는 본인이, 아랫사람이 출석해야 할 자리에는 아랫사람이 반드시 출석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법률 대리인도 넘어서서는 안 될 변론의 수위(水位)가 있다. 탄핵 심판은 일반 법정과 다른 격(格)이 있어야 한다. 심판을 오래 끌겠다는 단순한 지연(遲延) 전술은 대통령의 품위만 떨어뜨린다. 군중(群衆)은 광장에서 부르짖어도 대통령이 탄핵 심판 과정에서 광장에 군중을 불러모으는 언행(言行)은 삼가야 한다. 이 한계를 넘으면 대통령의 자기 부정(否定)이고 보수의 자해(自害) 행위로 비칠 뿐이다.
보수주의와 보수 정당은 감(敢)히 국민을 향해 나라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노선이다. 그러려면 지도자가 먼저 희생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위(地位)에 따르는 의무를 강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단어는 보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속 계급과 지역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다른 주의(主義), 다른 정당과는 배경이 다르다. 보수주의 정당은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의 정당'이란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한다. 이것이 안보와 경제에 유능한 정당이란 이미지와 결합돼 영국 보수당이 185년 동안 간판을 내리지도, 바꾸지도 않으면서 최장(最長) 집권하는 기둥이 됐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대통령 전두환은 6·10 민주 항쟁(抗爭)에 부딪히자 '나를 밟고 가라'며 후계자 노태우에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6·29 선언의 카펫을 깔아주었다. 지금 대통령은 탱크를 앞세워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투표한 유권자 51.6%의 표를 얻었다.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最多) 득표 대통령이다.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보수 정당의 사다리를 타고 그 자리에 올랐다. 정치적 혈육(血肉)에 대한 감사의 정(情)이 깊을 만도 하다. 그런데도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 보수 유권자는 표(票)를 던질 정당이 없다. 지지를 보낸다 해도 수취인(受取人) 불명(不明)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 문제로 '탄핵 반대 당'과 '탄핵 찬성 당'으로 분열됐기 때문이다. 두 당(黨) 모두 차기 대통령 후보를 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통령은 두 정당을 대통령 문제에서 해방(解放)시켜줘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 갖춰야 할 보수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예의(禮儀)이다. 그래야 한국 보수와 보수 정당이 용광로에 자기 몸을 던져 실낱 같은 내일을 붙들 수 있다.
출처;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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