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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우산 의전’만 과잉인가
차관에게 우산 받친 과잉 의전… 본질은 집권층의 권력 누리기 왕권 줄여서 민주주의 확대한 프리드리히왕의 교훈 새기길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09.01 03:00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고위 공직자들의 과잉 의전(儀典)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지난주 법무부 차관
브리핑 자리에서 직원이 차관 뒤에서 무릎 꿇고 우산을 받쳐 든 일이 국민적 질타를 받자 나온 조치다.
그런데 이게 의전이긴 한가. 사전에서 의전의 뜻을 찾아보니 ‘행사를 치르는 절차’라고 돼 있다. 이 정의
에 따르면 문제가 된 해프닝은 사전적 의미의 의전일 수 없다. 대통령이 언급한 과잉 의전은 힘 있고 권
력 있는 윗사람이 군림하면서 아랫사람의 굴종을 당연히 여기는 갑질 행태에 가깝다.

많은 국민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왕조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혀를 찼다. 하지만 과잉 의전은 왕조적
권력 누리기의 일부일 뿐이다. 정권 곳곳에서 시계를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린 것 같은 후진적 행태가
흔히 보인다. 얼마 전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자기를 추미애씨라고 호칭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향해 “상관에게 ‘씨’라고 부르는 용기가 가상하다”고 했다. 작년 초엔 검찰총장을 부하 취급하며 ‘거
역’이란 표현도 썼다. 거역은 왕이 ‘무조건적 복종’을 거부하는 신하를 겁박할 때나 하는 말이다. 국민이
준 권한을 법적 절차에 따라 한시적으로 행사하는 민주국가 공직자가 쓰기엔 부적절한 단어다. 한동훈
부원장이 공인을 ‘씨’라고 부르는 데 ‘가상한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도 민주국
가에선 높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법이 지배해야 한다는 지적일 것이다.

이 나라 집권 세력이 왕조의 지배자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적 공분
을 사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청와대가 “대통령이 격노했다” “불같이 화냈다” 같은 표현을 쓰는 것도 제
왕적 통치를 떠올리게 한다. 여군 부사관들이 성추행으로 고통을 겪다가 잇달아 목숨을 끊었을 때도 대
통령은 왕처럼 격노했다. 대통령은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 통수권자이자 국정 최
고 책임자로서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게 더 적절한 대응일 것이다.


이 정권 사람들은 대통령에겐 술술 사과해도 국민에게 하는 사과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외교관이 나라
밖에서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자 장관은 국민에게 죄송하다 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그런 장관
은 민주국가의 공직자인가 왕조의 신하인가. 자녀의 대학 입학 서류 위조가 드러난 조국 전 장관은 지
금껏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조차 이런 일이 터지면 국민에게 머리부터 숙였
다.

입법·사법·행정이 엄연히 분리된 나라에서 청와대 국민 청원이 존속하는 것도 왕조 시대의 신문고 제도
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 청원이 임금 마음대로 소원 수리 해주는 신문고의 위력을 갖는다면 민주주의의
재앙이고 법치 파괴일 뿐이다. 이 나라 법무부는 아프간 입국자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장관의 인형
전달식을 취재하지 않으면 취재를 제한하겠다고 해 물의를 빚었다. 언론을 정부 홍보 기관쯤으로 안다.
그러면서 비판은 듣기 싫다며 언론 제약 입법을 밀어붙인다. 이 또한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태다.

독일 국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은 우리의 세종대왕에 해당하는 성군이다. ‘국왕은
국가 제1의 공복’이라고 천명하며 등극한 그가 그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는 “왕이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는 약속이 아니었다. 그러려면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줄임으
로써 약속을 지켰다.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고 언론 검열을 없앤 것이 대표적이다. 프리드리히 통치 말
기에 베를린을 방문한 어느 영국 작가는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정부 시책과 왕의 행위에 대해 많은 사람
이 런던의 커피 하우스에서 수다 떨듯 거리낌 없이 말하는 자유”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자유조차 잃을
위기에 처한 것 같다.

출처;조선닷컴
2021년09월01일 17:14:5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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